이윤옥 / 한국외대 연수평가원 교수

몇년 전 건축사 몇 분의 통역을 맡아 일본의 전통마을인 ‘시라카와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시라카와 마을은 일본 기후현의 한 오지에 있는 마을로 전통가옥이 잘 보존되고 있어 일본에서는 물론 전 세계에서 이 마을을 보기 위해 연중 방문객들이 줄을 잇고 있는 곳이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이 마을의 전통가옥 양식은 지붕 모양이 두 손을 합장하듯이 합치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갓쇼즈쿠리, 合掌造り)으로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일본의 전통 초가집으로 보면 된다. 현재 이 전통가옥은 약 110여 채가 보존되고 있으며 1935년 독일의 건축가 브르노타웃이 쓴 ‘일본의 재발견’이란 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 책에서 브르노는 일본의 전통가옥을 가리켜 “매우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독특한 일본의 서민가옥”이라고 평했다. 거의 방치되던 마을은 이렇게 한 독일인에 의해 재발견, 재평가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오늘도 전 세계에서 비행기와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서라도 보고싶은 마을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것이다.

고양시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의 한 촌락이야기를 끌어들인 것은 다름 아닌 ‘전통마을’의 가치를 말하고 싶어서다. 일산은 도시 전체가 유기적이며 기능적으로 잘 설계된 데다가 신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정발산과 호수공원 등 주변 자연환경을 살리면서도 도시가 지닌 입체성과 정적인 전원적 분위기를 조화시킨 쾌적한 도시환경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숨은 매력을 찾으라면 신도시를 조금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수백 년 된 정감 어린 전통마을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아파트문화란 뉴욕이나 서울이나 도쿄나 매한가지여서 뭐 이렇다할 내세울게 없다. 때문에 단순한 아파트촌만으로 이뤄진 도시가 아니라 바로 주변에 내 조상들이 수백, 수천 년 간 터전을 지키고 살아온 전통마을이 자리하고, 거기서 옹기종기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마음씨의 이웃이 있어 더욱 정감이 가는 것이 고양시의 숨은 매력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랑스런 마을도 일산신도시 지역과 가까운 마을을 중심으로 하나 둘 헐려나가고 있다. 아름다운 전통과 훈훈한 인심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마을들이 헐리고 그곳에서 대대로 살아오던 씨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이 작금의 모습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이제 머지않아 고양시도 100% 아파트촌으로 변모될 것이 틀림없다.
마당 끝까지 입성한 고층 아파트 단지의 스카이라인이 금방이라도 텃밭의 일조권을 가릴 것 같다. 머지않아 사라질 전통마을을 우려해서인지 고양신문은 마침 고양씨족협회와 함께 전통마을에 살던 분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참 잘한 일이다.
하지만 더 서둘러야 할 일은 100%로 아파트촌화 하지 않고 전통마을도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길일 것이다. 누 대에 걸쳐 전통마을에 살고 있는 한 지인의 말을 들어보자.

“꽃나무 하나를 심어도 신도시에만 집중적으로 심고, 가로등을 달아도 신도시에만 촘촘히 단다. 번듯한 학교도 없고, 승용차 하나 겨우 다닐만한 마을길도 관심 밖이며 상하수도도 완벽하지 않다. 시내버스도 노선이 시원찮고 마을버스도 운행이 더디다….”
자못 경청할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고양시는 킨텍스와 한류우드와 같은 최첨단 단지 건설이 속속 들어서고 있긴 하지만 더불어 전통문화로서 자랑하고 내세울 수 있는 전통마을 가꾸기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명실상부한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진 명품도시로 자리매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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