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잔에 인생을 이야기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아버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또 사람들은 말한다. 아버지가 흔들리면 가정이 무너진다고.
여전히 아버지는 가정의 중심이고 존경의 대상이다. 아버지라는 남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소주 한잔 들이키며 세상살이 이야기하는 우리의 아버지, 그들의 이야기다.


▶ 아버지, 그 존재의 무거움

아버지 헛기침 한번으로 집안이 조용해지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 한해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간 남자들이 있다. 고 3아빠들.

오진원(53)씨는 고3 딸을 매일 밤 12시에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렸다.“자식은 밤잠 설치고 공부하는데 부모가 돼서 먼저 자려니까 미안하더라구요”라며 웃는다.

딸만 둘이라는 차성동(48)씨. “나만 집에 들어가면 하던 얘기도 그치고 다들 방으로 들어가요. 내 흉이라도 보고 있었던 건지…”
엄마만 따르는 아이들. 아이들만 챙기는 엄마. 사랑 표현에 익숙치 않은 아빠는 자연히 왕따가 되기 마련.

그래서 스킨쉽을 자주 한다는 아빠들도 있다. 박정석(45)씨가 그렇다. 안아 주고 뽀뽀도 한다. 아들과 팔씨름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려는 전략(?)이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을 접할 수 있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몇 가지 수칙이 있을 만큼 그건 어려운 일인가 보다. "애들이 용돈 달라고 할때만 와서 안겨요. 나 참 기가 막혀서..." 윤덕재(50)씨는 아이들 하는 짓이 귀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한 눈치.

이제 수능이 끝났다. 그러나 아버지들의 어깨는 더 무거워진다. 버는 돈은 한정돼 있고 아이들 커가면서 들어가는 돈은 많아진다. 저축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앞으로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친다”는 아버지들이 늘고 있다.


▶ 학벌사회 문제많다. 그래도 내 자식은 대학에 보내야지...

“대학에 왜 가야 돼요?” 딸이 묻는다. “좋은 남자 만나려면 학벌이 중요해”라는 궁색한 대답을 한다. 취직을 하든 결혼을 하든 학벌을 무시할 수 없는 우리 교육이 싫다. 점수 몇점 더 받는게 중요해 아이들 개성이 무시되는 것도 싫다. 그래도 어쩌랴. 내 자식만은 좋은 대학에 보내야지...

대학에 안가고 칵테일 만드는 걸 배우겠다는 아들. 윤덕재씨는 선뜻 그러라고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윤씨의 생각.

부모들은 아이를 과잉보호한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뭐라고 하는 걸 못 참는다. 곧바로 항의전화를 한다. 오진원씨는 "전에 치과에 갔더니 의사가 멀쩡해 보이는 이를 썩었다며 뽑으라고 하더라구요. 안뽑았지요. 결국 다른 이까지 썩어 고생을 했어요. 학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의사지요"라 말한다.


▶ 남자 40대 = 사추기?

남자가 나이 사십줄에 들어서면 사추기가 시작된다나? 차성동씨의 얘기다. 가끔은 가족들에게 기대고 싶지만 표현하지 않는다. 약한 남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다.

영화 속 우수에 젖은 남자. 바바리 코트 깃을 세우고 바닷가를 걷는다. 멋있다. 영화에서만 멋있다. 사춘기 아이들처럼 어설프게 흉내냈다간 직장에서 쫓겨나기 일쑤.

사추기의 남자는 남의 눈치보는 것에 익숙하다. 직장에서 상사 눈치를 보고 부하직원에게 치인다.

“젊은 시절에는 출세하려고 애썼지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더라구요. 그 동안 아둥바둥 살았지만 별로 해 놓은게 없어요” 이 나이 남자들의 소망은 소박하다. 자식 잘 되고 가족 모두 건강한 것. 어린 시절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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