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영 / 방송인·본지 편집위원

소문난 잔치, 먹을거리도 많기를

요즘 ‘연예인을 구경하려면 고양시로 가라’는 말이 있다. 3대 방송 중 두 개의 제작센터(SBS, MBC)가 고양에 있는 까닭이다. 길거리에서 심심찮게 연예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고양시민들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러나,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보는 즐거움 외에 어떤 실속이 있나? 방송제작센터가 들어와 이 지역에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고양시는 혹시나 양대 방송사가 들어와 있으니 ‘방송영상산업의 중심’이라는 막연한 환상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고양시는, 방송영상산업의 중심지가 되기 위한 야심 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른바 ‘브로맥스 프로젝트’다. 장항동, 덕은동, 삼송동 등 100만평이 넘는 부지에 방송영상도시를 건립한다는 것이다. 영화전문학교, 방송영상전문대학 등의 교육기관과 실내외 제작스튜디오, 영화방송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제작업체 유치, 테마파크 건립 등을 통해 기획, 생산, 유통의 원스톱서비스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실로 국내초유의 거창한 계획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일부는 이미 시작이 됐다는 이 사업이 현재 어느 정도까지 구체화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계획대로 실현이 된다면 고양시는 아마 국내 최대의, 아니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최고의 영상전문도시로 탄생할 것이다. 고양시는 다른 어떤 곳보다도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서울 중심지에서의 접근성, 편리한 교통, 북한산과 한강을 낀 뛰어난 자연환경, 그리고 양대 방송의 제작센터가 관내에 자리 잡고 있는 데다 여기에 인적시스템, IT기술 등 풍부한 인프라가 갖춰진다면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닐 것이다. 이미 한류의 폭발적인 힘을 실감한 바 있는 우리는 고양시의 이 야심 찬 계획에 박수를 보내며 반드시 그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러나 한편으론 또 몇 가지 우려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엄청난 자본과 노력을 퍼부어 추진한 결과, 만에 하나 겉은 화려하나 내실은 없는, 속 빈 강정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듯이, 잔뜩 차려놓고 벌려놓았으나 실익이 없는 그런 상태를 걱정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는 고양시뿐만이 아니라 국가적인 손실이 될 것이다.
단지 높은 빌딩과 시설만 갖춰놓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엔 사람이 있어야하고, 예술을 향한 열정이 있어야하고, 높은 문화적 성숙이 있어야 한다. 영상을 단지 산업적 측면으로만 생각하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이것저것 다 갖춰 놓았으니 영상산업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국내 영상업체들이 제 발로 걸어들어 올 것이란 생각은 그야말로 순진하다. 영상산업은 단순한 이벤트와 달리 고도의 복합적인 창작으로 외부환경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콘텐츠이다. 한류지속의 관건, 영상산업 진흥을 위한 선제조건은 그 첫째가 우리만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육성하는 것이다.

영상은 문학이나 미술, 음악 등 기초적인 예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 기본적인 바탕이 없이는 수준 높은 영상예술은 탄생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각 분야의 예술인들을 집결시켜 그들에게 창작의 열정을 불태우게 할 산실- ‘창작촌’을 건립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치열한 창작열, 작품이 곧 영상산업의 기초가 되고 그것이 곧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될 것이다. 영상산업과 예술창작은 수레의 두 바퀴인 셈이다. 외형과 시설보다는 창작의 주체인 사람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 잡다한 제작업체를 끌어들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수인력을 집결시키고 또 길러낼 교육기관이 우선적이라고 본다. 그 다음 단계로 제작의 구심점인 스튜디오, 오픈 셋트장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인적 물적 인프라가 갖추어져야 많은 영상관련 업체들이 모여들 것이고 브로맥스 프로젝트도 훨씬 탄력 있게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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