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에서 일하며 수많은 ‘보도자료’나 ‘제보’를 접한다.
92만이 넘는 인구의 고양시의 이모저모를 불과 몇 명의 기자들이 모두 직접 만나서 취재하는 게 어렵다 보니, 솔직히 때로는 이러한 보도자료나 제보가 요긴하게 사용된다. 그 보도자료 안에는 시 행정 소식은 물론 동네소식, 또 각 기관이나 시설의 소식이 들어있다. 그 중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나눔’ 소식이다.
동네에서 혹은 복지관이나 공공기관에서 저소득층을 위해 이러저러한 형태로 지원했다는 소식은 딱딱하기 쉬운 언론의 성향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구석이 분명 있다. 나 역시 그런 차원에서 여러 형태의 나눔의 소식을 직접 취재하거나 혹은 여타 방식으로 다루며 보도해 왔다.

그런데 최근 ‘지금 우리의 보도가 맞는가’하는 의구심이 자꾸 든다.
나 살기도 바쁜 세상에 이웃을 위해 넉넉한 마음을 쓰는 분들의 소식을 보도하는 데 망설임이 생긴다는 뜻이다. 보도자료에는 ‘불우이웃’이라는 표현이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되곤 한다. 물론 나는 ‘불우이웃’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불우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은 불편한 것일지언정 불행한 것은 아니다’라는 원론적인 말을 미련스레 믿고 싶은 까닭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였다. 고백하건 데 깊은 고민을 못한 채 보도자료나 제보를 기사화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보도자료나 제보를 주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기사로 보도하는 나에게 반문한다. 과연 이 기사를 접한 그 당사자의 기분이 어떠할지를….

분명 일일이 동의를 구하지 않았을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사진, 큰 망설임 없이 사용되는 ‘학습부진아’ ‘저소득층’‘소외계층’이라는 표현,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구구한 사생활…. 과연 그 기사를 본 도움을 받은 사람의 기분은 어떠할까. 특히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학생들에게는 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나눔의 마음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또한 그러한 나눔의 방식이 확대되기 위해 언론은 어려운 이웃의 소식과 그들과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모두 보도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좀 더 조심해야 할 듯 하다. 그네들의 사진을 찍는 것에도, 그네들의 이야기를 전함에 있어서도 좀 더 세심한 배려가 선행될 때 그 ‘나눔’은 더 값지고 빛날 테니까 말이다. 말하고 보니 ‘기사 쓰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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