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덕/ 신도제일교회 원로목사·높푸른고양 상임공동대표
일상의 올림픽은 이제부터 시작
8월 한달 동안 온 국민에게 흥분과 탄식, 그리고 환희를 선물해주었던 ‘2008 베이징 올림픽’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개막 전에는 중국인들의 반한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는 우려를 접하며 혹여 덩치 큰 이웃집 잔치에서 험한 꼴이나 겪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다행히 기우로 그친 듯 하다. 오히려 최민호 선수의 다섯 경기 연속 한판으로 시작하여 야구 대표팀의 아홉 경기 전승 우승으로 갈무리된 금메달 행진으로 역대 대회 중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하니 역시 세상일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 일이로구나!
최민호 선수는 지난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음에도 불구하고 애초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선수였나 보다. 그러니 메달을 따고 그토록 서럽게 울지 않았겠는가. 반대로 야구 대표팀은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었는데 그 기대에 보란 듯이 부응을 한 것이다. 정말이지 이보다 더 기특할 순 없는 노릇이다. 무명 선수는 무명이기에 외로움과의 싸움을 벌여야 한다. 반대로 유명 선수들은 기대감이라는 부담과 싸워야 한다. 이 세상의 어떤 명예와 영광도 결국은 각기 다른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소중한 열매임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고양시민들에게 이번 올림픽이 더욱 자랑스러운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그 중심에 고양의 자랑스런 딸 장미란 선수가 우뚝 서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인한 여성 장미란! 그녀가 세계 신기록을 연거푸 번쩍 번쩍 들어올리는 장면을 보며 함께 기뻐하지 않은 시민들이 어디 있으랴. 혹자는 장미란 선수의 현재 소속이 고양시일 뿐이지 타지 출신이 아니냐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스포츠는 개인의 능력에 더불어 최상의 훈련 여건이 뒷받침이 되어야만 최고의 자리에 설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미란 선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안정적으로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만들어 준 이들이 바로 우리 고양시민들이라는 자부심을 우리 모두가 가져도 좋을 것이다. 장미란 선수가 세계신을 기록한 후 기쁨에 찬 얼굴로 관중석 앞자리로 달려가 강현석 시장에게 포옹을 할 때 모든 고양시민의 마음이 바로 그 품안에 함께 했던 것이다.
장미란 선수가 이루어낸 성과는 단지 메달의 색깔이나 탁월한 기록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로 인해 새로운 아름다움의 기준을 보았다고 말한다. 한계에 도전하는 믿음직한 팔뚝, 고통의 시간을 견뎌온 강인한 다리, 온 세계를 떠받친 든든한 쇄골,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여성의 해맑은 미소…. 인간의 아름다움마저 상품의 가치로 평가되며 획일화된 미적 기준만이 통용되는 풍조 속에서, 장미란 선수는 모든 인간의 육체는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하고 그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때에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묵묵히 보여주었다. 수많은 여권 운동가, 페미니스트 사상가들도 하지 못한 일을 일거에 이루어낸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육체, 그리고 의지. 가장 단순하고 본질적인 것 속에 조물주가 숨겨둔 비밀들을 어리석은 우리들은 아직도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성화는 꺼지고 올림픽은 끝났다. 아무리 화려해도, 더없이 행복해도 마냥 잔치가 계속될 수는 없다. 박수 소리는 잦아들고 환희는 어느덧 추억이 된다. 그러나 하나가 되어 행복했던 기억, ‘고양시민’이라는 이름이 자랑스러웠던 경험은 모두의 마음속에 남아서 삶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남은 과제는 올림픽을 즐기며 얻어냈던 소중한 자산들을 우리의 일상 속으로 끌어오는 지혜를 발휘하는 일이다. 우리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지역사회 속에서 내 앞에 놓여진 각자의 도복 끈을 고쳐 매고, 배트를 휘두르고, 역기를 들어 올려보자. 자기 앞에 놓인 장애를 넘어 보다 높은 꿈을 향한 도전을 시작해 보자.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서로에게 손을 내밀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잊지 말자. 올림픽의 금메달은 최고의 선수 한 명에게만 주어지지만, 삶의 금메달은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하는 모든 이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그러니 진정한 올림픽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