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새도시 입주가 거의 마무리되던 96년 3월 전원도시라는 유혹에 이끌려 우아하게 한번 살아보자고 폼을 잡고 일산으로 이사를 왔다.
호수공원에도 가고 정발산에도 가고 제법 여유를 누리면서. 어느 날은 가족이 정발산에 올라 사진도 찍었다. 그때만 해도 30대 후반으로 거의 40대를 눈앞에 둔 시기였지만, 그때 사진을 보면 그래도 봐줄 만한 새댁의 느낌이 제법 난다. 지금 나의 모습은 머리도 희끗희끗하고 얼굴엔 주름도 제법 지고 누가 봐도 중년의 모습을 실감하면서 세월의 중압감과 초조함으로 인해 편치가 않다.

92년 생협을 통해 민우회를 처음 알고 94년부터 동북지부 운영위원을 시작으로 활동을 시작해 고양 여성민우회 창립멤버로, 작년부터는 대표를 맡아 올해 2002년에 이르게 되었다. 거의 10년을 민우회원으로 생활해왔는데 과연 민우회는 내 인생에서 무엇이었을까?

처음 새댁이었을 땐 아이들 키우면서 사회와 단절되어 느꼈던 소외감과 무력감에서 나를 소통시킬 수 있는 구조로서,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장으로서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로 내게 다가왔다. 아주 착했던 아이들 덕에 4살 짜리 큰애 하나는 걸리고 18개월 짜리 작은애는 들쳐 안고 중계동에서 쌍문동 지부사무실까지 힘든 줄 모르고 다녔었다. 그때는 동북지부가 막 오픈한 직후로 다양한 사회교육 강좌, 여성학 강좌, 자녀교육, 건강강좌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학교 다닐 때 듣던 강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살아있는 지식들..

가정에 안주하려 애쓰며 그러나 결혼 속에서 부딪치며 뭔가 이해되지 않았던 답답함과 불합리한 문제들을 풀어내는 계기가 되었고 그야말로 살 맛 나는 시간들이었다.
직접 넣어주진 않았지만 그 장을 펼쳐준 민우회가 고마웠고,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 역시 공감할 수 있었기에 주저 없이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내가 받은 만큼 또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는 바램과 어느 정도는 의무감도 느끼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느꼈듯이 결혼해서 비로소 느끼게 되는 여자로서 살아가는 어려움을 함께 할 수 있는 장으로서, 사회적 친정으로서 역할을 민우회가 많은 이에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작년 고양 여성민우회 목표는 좀더 회원들 결속을 강화하고 많은 회원들이 활동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사 양성, 인간관계 강좌, 각 소모임 등을 활성화하려고 노력했다.

올해 목표 역시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우선은 우리들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가지고 자신감과 힘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나의 가족만이라는 틀을 뛰어 넘고 우리라는, 더불어 산다는 공동체의식을 공유하면 더욱 좋겠다. 직업이 있는 회원도 있지만 회원 대부분은 전업주부이기에 여성들이 처한 또는 지역의 현안들에서 일단은 한발 뒤쪽에 물러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어느 것 하나 여성들과 또는 우리들의 삶과 무관한 게 있을까?

2001년도에 고양시를 시끄럽게 했던 굵직한 지역사안이 많이 있었다.
러브호텔 싸움, 개명산 골프장 반대, 55층 주상복합아파트건설 반대, 나이트 클럽반대 운동. 그 과정에서 단체장과 일부 시의원들의 무능력과 의지 없음을 확인하면서 분노와 무력감과 허탈감으로 괴로운 한해이기도 했다.

올해 역시 월드컵에, 지방자치 선거에, 아세안 게임에, 대선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사건이 많고 시끄러운 한해가 될 것 같다. 매스컴에서 특히 보수적 언론들이 쇠뇌시키듯 말하는 정치 경제 사회문제에 무관심하게 사는 것이 고상하고 깨끗한 삶은 아닐 것이다.
비록 좌절하더라도 더 적극적으로 우리의 의지를 보이고 대응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며 이 시대를 살아내는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성장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고 더불어 사는 삶을 나누는 장, 그리고 좀더 시야를 넓혀서 지역이나 다른 이들의 문제에도 동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장, 그래서 좀더 나은 세상에서 모두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꿈을 꾸어본다.
<고양 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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