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평행선…이제 보따리를 풀자

“아, 일산시에 사시는군요.”
고양시에 살면서 종종 듣게 되는 다른 지역 사람들의 얘기다. 여기에 두 가지 반응이 있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은 타지역에서 이사온 ‘신도시 이주민’. 얼굴을 붉히며 “고양시라니까요. 일산시는 없습니다.”라는 이들은 ‘토박이’고양사람들이다.

토박이들이 볼 때 신도시 주민들은 ‘하늘에서 떨어진’사람들. 신도시 주민들은 그나마 토박이에 관심조차 없다. 토박이는 피해의식으로, 신도시 주민은 무관심으로 그저 평행선이다.

토박이와 이주민들을 가르는 예는 많다. 일산 신도시 바깥 지역을 예전 신도시 사람들은 신(新)의 반대,‘구(舊)일산’이라 불렀다. 그러나 고양 토박이들은 절대 ‘구일산’으로 부르지 않는다. ‘본일산’이다.

신도시 입주가 막 시작된 92년. 고양시에 ‘학군분리 반대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신도시 사는 사람만 신도시 고등학교에 갈 수 있다는데…. 결국 학군은‘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양시를‘분리’하는 골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처음 고양시 지도에는 시청이 세 곳이나 되었다. 주교동 600번지, 일산신도시 27-83블럭, 화정지구 70-71블럭이 모두 ‘시청’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일산과 화정에 시청을 그려 넣은 건 한국토지개발 공사. “일산과 화정이 독립된 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고.

시청을 놓고 벌어진 삼파전에서 “시청은 옮길 수 없다”는 완고한 주장에 신도시 주민들은 ‘시청유치위원회’를 만들고 “일산에 시청이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양시청은 아직도 주교동에 있다. 일산신도시와 화정 ‘시청 자리’에는 각각 일산구청과 덕양구청이 자리했다.

분당과 함께 활발하게 논의가 이뤄졌던 독립시 논쟁에 대해서는 아직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일산신도시 입주자 대표협의회를 중심으로 ‘일산 독립시 추진위원회’가 구성됐고 잠시동안 주민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당시 신동영 고양시장과 이인재 일산구청장이 수습에 나섰고 대신 ‘광역시 추진’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짐도 다 풀지 못한 신도시 주민들은 지역 기득권에 큰 관심이 없었고 토박이들의 반감을 키운 채로 논쟁은 사그라들었다. 독립시 논쟁이 신도시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모든 국회의원 출마 희망자들의 공통 공약으로까지 만들었던 분당과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 셈.

신도시 이주민들의 외면 속에 여전히 고양시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토박이들. 시민의 대표 시의원들 역시 30명 중 4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양시나 인근에 연고를 갖고 있다.

비슷한 시기 신도시로 조성됐으나 한 도시에서는 지역 발전의 원동력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반면 다른 곳에서는 지역 토박이들에게 미움받는 ‘주홍글씨’로 남아있다.

‘개발과 보전’ 논쟁은 표면적으로는 땅을 가지고 있는 토박이들과, 보다 쾌적한 삶을 영위하려는 신도시 주민들의 분쟁으로 비춰질 수 있다. 고양시를 장기적으로 개발하는데는 이들의 이견을 긴 안목을 가진 계획 속에서 재배치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

분당은 자칫 지역 이기주의로 비쳐질 수 있는 논쟁에 끊임없는 고민과 이주민들의 참여가 뒤따랐기에 당당히 시 운영의 한 축이 되어 화합을 모색할 수 있었다. 일산에서는? 무엇보다 고양시에 관심을 갖는 전문가와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을 그릇이 작다. 전문인들의 에너지를 흡수하지 못하는 것은 고양시로서도 막대한 손해.

그 어느때보다 고양시 통합과 비전을 제시할 시민·전문가의 모임이 간절하다. 신도시 주민들이여, 이제 그만 보따리를 풀자.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