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경 / 강촌수필 회장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원유값이 천정 부지로 오르고 있다. 불과 이년 전 이십 여불 하던 것이 120불을 넘어서고 있다. 중국과 인도와 같은 덩치 큰 나라들이 경제 성장을 하면서 수요가 늘고있기 때문이라 한다. 기름 절약이 다급한 시대가 되었다. 이미 고유가에 따라 우리나라는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므로 경제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아 그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
시민적 입장에서 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도시 내에서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는 일이 이를 위한 대안 중 한가지가 될 것 같다. 한 시절 우리에게도 자전거는 많은 사람들이 애용했던 친숙한 교통 수단이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면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이웃을 찾아가거나 시장을 보러 갈 때, 혹은 그다지 멀지 않은 출퇴근을 위해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은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여건만 주어진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도시 환경은 자전거를 위한 여건이 충분치 않은 탓에 자전거는 일상 생활을 위한 교통 수단으로 아직도 시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자전거 도로라고 만들었지만, 고작 공원 내의 자전거 산책로가 고작이고, 도시 내에선 인도 안에 협소하게 만들어 그 통행이 결코 쉽지 않다. 사람에 부닥치고 전봇대에 부닥치며 각종 시설물이 통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미 만들어 놓은 자전거 도로는 유명 무실한 방치된 존재 일 뿐이다. 자전거는 고작 건강을 위해 공원에서 운동 삼아 타는 운동 기구 일 뿐, 교통 수단으로서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자전거 타기는 에너지 절약 효과를 기대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도시 내에서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전거를 자동차처럼 편하게 탈 수 있는 도로를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그 구체적 방법은 자동차 도로의 일부를 할애해서 자동차와 함께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위험하다고 하며 이를 기피한다.

물론 안전은 중요하다. 하지만 과거엔 우리도 도로에서 자동차와 어울려 자전거를 즐겨 타던 시대가 있었다.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동남아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자동차와 함께 어울려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안전이라는 어휘에 지나치게 과민해진 것 같다. 그래서 매사에 안전이 우선되어 과속방지턱이나 펜스 같은 불합리한 안전 시설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 합리화나 효율은 안전만큼이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는 사회의 총체적 안전과 맥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한 일은 자율에 의해서도 가능한 것으로 억지적 시설물에 의해서 안전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선진화를 향한 입장에서 시대 착오적 발상이 아닐까. 자동차 도로에서도 안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만 마련하면 자전거도 자동차처럼 편리하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시 내에서 차선에 따라 자동차의 주행 속도를 낮게 제한하면 위험 요소가 줄어들 것이다. 도로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그것도 도시 내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아지면 상대적으로 자동차의 수가 줄어들 것이므로 자전거 도로에 따른 도로의 부족 문제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자전거는 바퀴로 가는 운반체이므로 인도로 다니기보다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도로를 달리는 것이 순리이자 합리적일 것이다. 선진 사회란 용기 있는 도전적 시민 의식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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