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수 / 전 한국편집기자협회장

‘탈(脫) 오일’ 시대가 손짓하고 있다

소달구지를 문 앞에 세워놓고 아빠는 아이들을 기다린다. 오늘은 일요일, 온가족이 박물관에 구경 가기로 한 날이다. 박물관이 그리 멀지는 않지만 걸어가기엔 좀 그렇다. 그래서 마차를 타고 가기로 한 것이다. 보리빵과 감자, 옥수수로 점심을 준비했다. 경쾌한 방울소리를 울리며 마차는 박물관을 향해 떠났다.
2차 오일쇼크는 78년 말 이란 회교혁명을 배경으로 시작됐다. OPEC 2위 석유수출국이던 이란이 원유생산을 중단하자 OPEC는 기습적으로 기름 값을 올렸다. 이에 불안을 느낀 주요 소비국들이 국제시장에서 원유 사들이기에 나섰다. 유가는 급등세를 타 그 해 11월 배럴당 13달러이던 두바이유 가격이 다음해 3배로 치솟았다. 그때 평균 유가에 실질 물가수준을 감안한 가격인 104달러.

30년이 지난 지금 150달러를 육박하기도 했다. 하루하루 심한 등락을 거듭하고는 있지만, 불안은 갈수록 증폭된다. 한때 “3차 오일쇼크가 온 것이 아니냐?”며 위기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중동 산유국들의 실제 석유 매장량도 예상을 훨씬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방 선진국들은 ‘탈(脫) 석유’쪽으로 발 빠르게 옮겨간다. 태양열, 풍력 등 이른바 클린 에너지 생산에 열을 올린다. 석유를 동력으로 하는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꿔나간다. 급기야 자동차가 멎고 전기도 꺼진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고층 아파트는 폐허가 되고, 수수깡 울타리의 재래식 토담집이 하나 둘씩 늘어난다. 자동차, 기차는 물론 자전거까지도 자취를 감췄다. 모든 집에 호롱불이 켜지고, 겨울에는 벽난로가 온기를 채운다. 한편 빠르게 진행되던 지구 온난화는 멈추고 자연생태계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픽션은 계속된다. 박물관에 도착한 아이들은 수십 년 전 조상들이 사용하던 여러 가지 물건들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본다. 아버지는 열심히 설명해준다. “이것이 자동차란다. 우리 조상들은 휘발유라는 위험한 연료를 넣어 더 위험한 자동차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했거든. 속도가 빨라 이동하기엔 편했지만,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는지 모른단다.” 설명을 들은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다. “도대체 왜 그렇게 위험한 물건을 타고 다녔죠? 지금 우리가 타고 다니는 우마차가 얼마나 편리하고 안전한데….” 모두 딱하다는 듯이 혀를 찬다.

다음은 벽에 붙어있는 전기 코드다. 플러그를 꽂으니 가벼운 스파크가 일며 깜박이던 전구에 불이 환하게 켜진다. 보는 아이들은 얼굴을 찡그린다. 그 또한 위험하기도 하지만 불빛이 호롱불에 비하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백열등도 그랬고 형광등 불빛엔 아예 고개를 돌렸다. 주방 조리기구와 요리하는 모습을 그림과 사진으로 보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형형색색의 조미료가 약봉지처럼 전시되어있었다.
이번엔 철길에 올려놓은 기차를 둘러봤다. 그 흉물스런 모습이 마치 자기네들을 향하여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 한 기세다. 어디선가 녹음된 기적소리가 들린다. 다음은 비행기차례다. 하늘을 날아다녔다고 배웠다. 아시아, 유럽을 몇 시간 안에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기름이 엄청나게 많이 들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란다.

박물관에서 돌아와 공책을 펴놓고 숙제를 한다. 박물관 견학기다.
“오늘은 아빠와 박물관에 다녀왔다. 수십 년 전에 조상들이 사용했다는 여러 가지를 구경했지만, 특히 석유라는 에너지로 움직였다는 자동차, 비행기가 퍽 인상적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위험한 물건들을 목숨 걸고 타고 다녔다는 사실이 믿어지질 않았다. 이제 다시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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