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한 / 본지 편집위원

미국발 신용위기가 몰고 온 경제 한파가 공포스럽다. 자금경색으로 우리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의 도산 위기가 엄습하고, 바닥 경기를 가늠하는 재래시장 자영업은 이미 휴업 상태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한번 덴 경험이 있어 대기업 금융업 등도 몸을 사린다고 하니 서민의 삶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IMF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위기현상에 대한 원인과 전망만 난무할 뿐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정부는 오락가락 시행착오만 연발한다. 세계적 경제위기 쓰나미에 소형 개방형 국가인 한국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나름 선방했다고 자위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온갖 어려운 경제용어를 동원한 연일 쏟아지는 지면에 비전문가가 한 마디 보태는 것이 송구하지만, 문화나 경제가치관 면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는 용기를 내어본다.

지금 전 세계가 위축되어 있지만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두 들떠있었다. 건전한 성장의 과실을 즐겼던 것이 아니라 허수에 놀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화폐의 마술에 걸려든 것이다. 미국의 투자은행은 신묘하다할 각종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전 세계를 현혹시켰고 이에 세계가 장단 맞추어 한바탕 난장을 벌였다. 월가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소시민까지 펀드 광풍에 휩싸여 금융투기에 열광했다. 열심히 일하면 돈 벌어 잘 살수 있다는 본래 자본주의 정신은 ‘돈 벌려면 주식을 해야 한다’라는 식의, '돈 놓고 돈 먹기'로 완전히 변질되어 버렸다. 일해서 돈 버는 것은 어리석은 일로 치부되어 버리고 사람들은 '이지 머니'를 쫓고 있었다. 경제활동의 윤활유로서의 본래 기능인 금융이 실물과 동떨어져 투기장화 된 것이다.

우리는 진부할지 모를 의리 검약 근면 등 도덕률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천문학적 숫자의 구제금융 지원으로 위기를 극복하려하는 반면, 독일의 경우처럼 위험을 무릅쓴 당사자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며 검약의 전통으로 이 위기를 넘기고자하는 것은 좋은 본보기다. 미국도 우여곡절 끝에 구제 금융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지만 세금으로 투기 자본가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 옳으냐며 부자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국민의 전통이 이를 계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는 재부관(財富觀)에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부귀는 하고자 하는 것이나 정당한 방법이 아니고는 얻지 않는다’며 이(利)를 보면 의(義)를 생각하는 것을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던 것이다.

우리 경제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전후국가 중 가장 빠른 성장을 거두었다. 그것은 주로 일본경제와 미국식 모델을 적용하면서 이룩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델을 수정할 때가 온 것이다.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했음을 이번 위기로 전 세계에 선언하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영미식 모델이 아닌 북구유럽형 모델을 가져와야 한다고 한다. 지금 대안 모델로써 바른 길이긴 하지만 여전히 모방경제로 종속성은 벗어날 수 없다. 자생력을 상실하고 남의 경제를 모방만 하다가 그 충격에 부침을 거듭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위기가 글로벌 위기의 쓰나미라고 핑계 댈 수 있지만, 경제생활에 바탕이 되는 도덕률 문화 등 이를테면 한글이나 금속활자를 만들었던 문화민족으로서의 저력이 물신의 망령에 함몰되어 나타난 부작용이라로 본다면 지나칠까.

사태가 이지경인데 언 발에 오줌 누듯 환률 방어, 금리 인하, 세금감면 등 임시응변적인 내용만 쏟아놓으니 답답하다. 이미 미국식 경제는 끝장난 것과 다름없다는데 정부와 일부 언론들은 아직은 견딜만하다고 실패한 미국의 시장만능주의를 주창하고 있으니 어지럽다. 당면한 경제위기 해법에 다급한 상황에 의리 검소 근면 청렴 등 도덕적 헤져드를 경고하는 것은 한가한 넋두리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들도 경제발전에 있어 인간의 올바른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제 경제부처뿐만 아니라 문화, 교육 담당부서에서 투기 자본에 굴복한 구제금융 따위의 해결책이 전부가 아니라는 쓴소리를 하셔야 할 것 같은데 그곳 역시 경쟁력의 덧에 빠져 정신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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