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서 허둥대던 때가 언제인데, 아니 벌써 새해 달력의 첫장을 넘겨야 하다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하기야 밀레니움이다 뭐다 하면서 세상이 온통 뒤바뀔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었던 시간이 기억의 한 귀퉁이에 여전히 남아 있는 마당에 새해의 첫달 정도 훗딱 지난 것쯤이야 별 것 아닐 수도 있으리라.

새해가 도래할 때면 힘찬 각오와 부풀은 희망들이 이곳 저곳에서 샘솟기 마련이다. 올해는 기어코 뭔가를 해내리라는 각오와 제발 올해 그것만은 이루어지길 바라는 소망들이 말이다. 이주일 신드롬이 빗어낸 금연 열풍이 매스컴에 날마다 소개되면서 올해야말로 지긋지긋한 니코틴에서 벗어나겠다는 개인적 각오가 그것이고, 월드컵 16강이라는 국민적 소망이 또한 그것이다.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벌어질 올해 지방정치와 중앙정치 지망생들에게 역시 그 누구 못지 않은 각오와 꿈이 있을 것이다. "지난 번엔 떨어졌지만 이번엔 기필코...", "지난 번의 여세를 몰아 이번에도 ..." 등등의 각오가 벌써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다. 한두 번 경험한 바 아니기에 우리는 저 각오와 희망의 충돌 공간 속에서 오고 갈 추악한 언사와 상호 비방을 벌써 예감하고 있다. 또 선거철이면 으레 악어새처럼 등장하는 꾼들도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한 건을 올리나"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음직 하다.

그러고 보면, 올림픽보다 더한 부가가치가 있다는 월드컵이, 국가의 흥망을 좌우한다는 지방선거와 대선이 버티고 있는 올 한해는 특히나 소란스러울 것 같다. 소망과 각오가 다양하고 이질적일수록 충돌은 필연적인 귀결이고, 그로부터 야기되는 시끄러움은 비례적으로 증대될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월드컵 16강이 국민의 소망이라해도, 이런 저런 선거가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것이라해도, 하루하루가 힘든 우리들에게 저런 거대한 외침은 웬지 공허하게만 다가온다. "혹시 저것들은 그들만의 소망이고, 그들만의 향연은 아닐까"하는 일상의 의구심은 연말정산을 위해 온갖 영수증 수집할 때 더욱 증폭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들의 소망"이 아니라 "우리의 소망"이 아닌가. OECD국가 가운데 우리처럼 밖의 소리와 외양에 쉽게 유혹되고, 속도와 개발을 그토록 강조하는 문화와 정서를 갖고 있는 나라가 또 있는가. 그렇지만 외부의 소란스러움 때문이 우리 안의 평정이 훼손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래서 밖의 아우성이 아니라 내면의 은밀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는, 복잡한 잔꾀가 아니라 단순한 열정에 영혼을 맡겨보자는 소망을 올 한해 한번쯤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월드컵 경기를 관전하고 선거 한 표를 던지고 난 다음에, 산새가 지저귀는 적멸의 산사에 올라가 존재의 느림 속에서 잠시라도 자아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면 너무 사치스런 소망인가.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