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을 맞으며

▲ 김형오 시민옴부즈맨공동체 대표(행정학박사)

답답한 가슴, 불안한 마음을 짓 누리고 있는 무자년을 뒤로하고 희망찬 기축년을 맞이했다. 
오래전부터 소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재산이요 머슴 중에 상머슴으로 누구보다도 우애 있는 소중한 생구(生口)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소가 임신을 하면 사람처럼 자상한 대우를 해 주었다.  마구간에는 소 옷과 신발, 쇠빗과 여물통 등을 미리 정리해 두었으며, 출산을 하면 미역국을 끓어주고 대작대기를 사릿문에 걸쳐 새끼줄로 금줄을 쳐 액을 쫓고 부정을 막았다.

이렇듯 소를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소를 가장 친밀한 식솔 중의 식솔로 여겨 다목적 인과관계를 맺어 오면서 떼어야 떼일 수 없는 불가분한 관계로 상존하여 왔다.  때로는 논밭을 일구는 농경의 가장 큰 도구로, 때로는 교통과 화물의 수단으로, 때로는 하늘에 재단의 제물로, 그리고 죽어서는 자신을 모조리 인간을 위해 보신의 탐식용도로 헌납하며 오로지 인간을 이롭게 하는 성물(聖物)로 존재하여 왔으나 최근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름하에 소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잊어버린 채 소에게 채식대신 육식을 강식(强食)하여 광우병이라는 괴질을 퍼뜨려 세계가 시끄럽고 우리도 지난 해 곤욕을 치른바 있어 인간과 소는 영욕(榮辱)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유구한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해 온 소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소에게서 얻은 교훈을 상기시켜 보자.

첫째, 소는 “의”로운 동물이다.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자 호랑이와 격투 끝에 죽은 <삼강행실도>의 ‘의우도’나 ‘의우총’이야기나, 눈먼 고아에게 꼬리를 잡혀 이끌고 다니면서 구걸을 시켜 살린 ‘우답동’ 이야기에서 소의 의로움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의리를 위해서는 우둔하고 미련하면서도 지혜의 샘이 있고, 느리면서도 용맹이 있으며, 의를 위해서는 죽음을 무서워할 줄 모르는 고집이 있다.

둘째, 소는 우직함의 상징이다. 소는 서두름이 없다. 백정의 손에 끌려 도살장으로 간다거나, 코뚜레를 뚫어 성년식을 한다거나, 발정 난 암소를 보면 하늘을 향해 바보처럼 웃어대며 용을 쓰거나, 암소가 송아지를 뗄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평정심으로 일관하는 평온한 선사(禪士)처럼 되새김질을 하는 모습이야말로 소의 백미(百媚)로 중후한 철학자의 자태가 아니겠는가

셋째는 소는 충효의 영물(靈物)이다. 소가 충직(忠直)하다는 말은 예부터 ‘인구에 회자’되어 왔다. 소처럼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시키는 대로 따르는 정직한 피조물이 그 어디에 있으랴. 소에게는 사(邪)가 없으며, 오로지 진(眞)이 있을 뿐이다.

넷째는 소는 성실함 그 자체다. 옛말에 ‘황소걸음 천 리 간다’는 말이 있다. 매사를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추진해야한다는 이야기다.  성급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소는 우직하고 우둔하다. 그러나 주워진 과업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정도를 걸어가는 여유를 보인다. 천성이 오버 페이스를 모르는 성실함 때문이다.

우리는 희망찬 기축년을 맞이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세계가 꽁꽁 얼어붙고, 우리도 냉혹한 디플레이션바람에 전국이 동토(凍土)가 되어 곳곳에서 신음소리만 들리고 있다.  그러나 봄을 기다리는 마구간의 황소처럼 이제 기지개를 켜보자.

그리고 겸허한 자세로 소가 주는 가르침을 따라가 보자. 위정자는 쇠귀에 경 읽지 말고, 황소고집 부리지 말자, 천심과 인심을 모아 하늘에 노여움을 풀어 자연에 순응하고, 국가의 풍요를 비는 제사장으로써 소꼬리 쥔 놈이 되자.  이럴 때 일수록 우리 국민은 조급하지 말고, 의를 쫒는 여유를 갖고, 황소걸음으로 묵묵히 목표를 향해 뚜벅 뚜벅 첫걸음을 내딛자.

/ 시민옴부즈맨공동체  대표(행정학박사)  김  형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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