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로 사라진 고양의 옛 집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역사적 공간

인간은 가치를 여길 줄 아는 동물이다. 하지만 가치란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서 보물로 빛을 내기도 하고, 폐물이 되어 그냥 사라져 비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귀하게 여기는 다이아몬드도 돼지들에게는 한입거리의 썩은 감자만한 가치도 없는 것일 터이니 말이다.

우리가 지금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발전하는 세계10대 신흥도시”라는 고양시를 둘러보면, 이곳에 사람이 발을 들여 놓은 지 수 천 년이지만, 신도시를 만들려다 발굴된 탄화볍씨가 5000여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었다는 것을 증거할 뿐, 여타 구체적인 선조들의 삶의 자취는 온데간데없다. 이제 남은 것은 조선조 왕족들의 10여기 왕릉들과 몇몇 사찰의 전각들과 북한산의 산성유적 그리고 임진난 당시 행주산성의 처절한 싸움을 증거하는 기념관이 전부라 할 정도다.

드넓은 논밭과 마을들을 쓸어버리고 이처럼 100만명이 살아가는 어마어마한 신도시를 만들면서 우리가 남겨놓은 선조들의 주거유적은 단 하나 밤가시마을 초가집 한 채뿐, 나머지 모든 것들은 폐기물이 되어 쓰레기장으로 가버린 것이다. 다시 삼송신도시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그곳에 지켜오던 고양선인들의 자취가 얼마나 남을 것인지,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당장 돈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공사에 지장이 될 뿐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대세이고 보니 당장 경제적 이익이 안 되는 것을  위해서 막대한 돈을 들일 수 없다는 결론이 이미 와 있기 때문이다.

과연 지금의 몰문화적이고 지엽적 경제논리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대부분 전통한옥의 자취가 사라져간 후에야 뒤늦게 서울에서 한옥을 살린다고 야단인 것을 보면, 이제라도 고양시도 뛰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볼 일이다.

서울시가 이처럼 뒤늦게나마 한옥보존에 열을 올리게 된 이유도 알고 보면, 우리 스스로가 한옥의 가치를 알고서 보전대책을 세워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것을 찾던 외국인들이 “왜 그 좋은 한옥을 다 없애버리느냐”고 자꾸만 물어 와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되고, 이제야 보존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옥과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런 관심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에도 오래된 주거문화유적이 있는지 수소문 하던 중, 300년을 원형 그대로 유지해 온 가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집은 대자동 양지바른 곳에 있었는데, 그 집 앞에 당도하여 집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뜻밖에도 그 집은 만 300년이 된 고택이었고, 보기 드물게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중부지방의 잘 지은 대가집이었다. 근처에 살고 있는 그 집의 종손을 만나보니, 그 집은 지을 당시에는 숙종의 장인이던 김주신이란 분이 살던집으로 현재 10대를 내려오면서 지금까지는 본래의 형태를 전혀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지만, 이제는 너무도 낡고, 고치자니 그 비용도 감당할 수 없어 차라리 철거해버리고, 새집을 지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냐하면 후손들이 생활에 편리함을 좆아 입맛에 맞게 고쳤더라면 본래의 형태가 많이 사라져버렸을 것이고, 또 구조를 보완한다고 기울어진 부재들을 임의대로 갈아 끼웠더라면 이 또한 300년 전 당시의 전통주거양식을 알아볼 수도 없게 변형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다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자료가 없어지면, 역사자체가 사라지고 만다. 후대에나마 그 가치를 알아주는 후손들이 있으려면, 적어도 역사적인 실증자료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이 집이 없어지면, 이제 고양시에는 300년 이전의 주거역사는 영원히 사라진다.

수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면 뭐하겠나, 아무것도 실제를 증거로 남은 자료가 없는데 ‘세계 10대 신흥도시’를 자랑하면 뭐할 것인가? 선조들이 남겨놓은 유물을 이렇게 무참히 사라지려해도 아무런 대책이 없는데 이러고도 우리는 유구하고 찬란한 문화를 언급할 문화시민 자격이 있는지. 우리 주변의 소중한 문화재를 버려두면서 세계10대도시 간판을 세우는 것은 곧 무너질 모래성을 쌓는 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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