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살은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이 아니다.

계절 가운데 봄은 생명이 꿈틀대는 계절이다. 벌써 매화와 산수유가 만개하였고 머지않아 개나리 진달래 등이 산천을 뒤덮을 것이다. 이처럼 산천엔 생명의 기운이 충만하건만 이 산천을 의지해 사는 사람들은 도리어 스스로의 삶을 자살로 마무리한 소식이 꼬리를 물고 있으니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억울해서 죽고 먹고살기 힘들어서 죽고 등등 그 이유를 들어 보면 일면 동정이 가기도 하지만 왜 자살까지 해야 했는지에 대해서 수긍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왜 사람들이 자살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본 결과 스스로에게 괴로움이 있을 때 이 괴로움은 몸을 통해 느끼므로 몸을 죽이면 그 고통도 없어지리라는 생각에서 자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잘못 된 생각이다. 한 예로 ‘죽은 사람은 천당과 지옥에 간다’는 말만 생각해 보더라도 금방 드러난다. 몸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야 할 터인데 천당과 지옥에 간다는 것은 몸과 상관없이 존재에겐 고락이 계속됨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살은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 생명경시의 풍조를 종식시키자.

사람들은 요즘처럼 자살이 많은 것은 생명을 경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생명의 뜻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생명이란 살아 있음과 운명이란 두 가지 측면의 뜻을 가지고 있다. 살아있음은 생체와 정신의 기능에 대한 면이고 운명이란 삶의 모습에 대한 면이다. 사물은 모두가 이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볼펜 한 자루도 이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볼펜에 잉크가 채워져 있어 잘 써지면 살아있는 볼펜이며, 어느 공장에서 만들어져 어떤 유통과정을 거쳐 누구의 소유로 어떤 내용의 글을 쓰다가 기능이 다하는가는 그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기능이 다해 쓰레기통에 버려지더라도 그 몸으로 쓰인 글들이 남겨지게 되므로 이에 대한 과보도 반드시 있게 되는 것이다. 오직 인간과 볼펜의 차이점은 동물인 인간이 능동성에서 뛰어나다는 것일 뿐이다.

생명이란 이와 같기에 생명을 경시한다는 말을 몸을 경시한다고 이해해선 안 된다. 곧 성형을 하고 장기를 이식하는 것을 생명을 중시한다고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와 반대로 얼마 전에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처럼 기계를 통해 몸의 생명 연장을 반대하는 이를 생명을 경시한다고 말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란 몸의 기능과 마음의 기능이 온전히 살아있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일컫기 때문에, 이렇게 살고자 하는 이가 생명을 중시하는 사람인 까닭이다.

그래서 자살은 몸의 경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현재의 사람들이 몸을 얼마나 아끼는지는 성형이 흥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살은 무엇을 경시하여 만연하는 것인가? 올바른 정신을 경시하는데서 오는 결과이다. 곧 몸의 기능만 살리려 매달리다가 정신기능은 마비를 일으킨 것이라 설명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사람들이 정신기능을 온전히 발휘하며 살 수 있도록 정신을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올바른 정신을 살려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게 하고 삶의 의욕이 넘치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자살 없는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산 정신으로 사는 사회를 만들자.(09.4.1.) 
김백호(선도원, 단일문화원장) danilw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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