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편집국 편집회의는 언제나 긴장이 감돈다. 지금은 거의 조간으로 돌아섰지만, 15년 전만해도 석간신문이 많았고 아침회의는 촉박했다. 낮 12시에는 신문이 돌아야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사무실을 쏟아져 나오는 샐러리맨들에게 뉴스보이들은 악을 쓰면서 신문을 판다. 지금은 이미 잊혀져버린 추억거리. 신문팔이(그땐 그렇게 불렀다)들은 어느새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달달 외워 소리치며 신문을 내민다. 특종이면 불티나게 팔린다. 그런데 뉴스가 어찌 그리 샘솟듯 하는 것인가. 그래서 편집회의는 무겁다.

“뭐 좀 큰 거 없어요?” 편집국장은 짜증스럽게 묻는다. 바로 이때, TV화면을 모니터하던 수습기자가 노크도 없이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성수대교가 무너졌답니다!”
회의장은 돌연 술렁인다. 회의는 더 이상 없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르르 몰려나간다. 더러 쾌재(?)를 부르기도 한다. 입장의 차이란 이런 것일까. 사고가 나 울고불고 하는 장면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1994년 10월 21일 아침 8시께. 그보다 20분쯤 전인 7시 40분께 서울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 중간 다섯째와 여섯째 교각 사이의 상판 48m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 사고로 출근 및 등교 길의 승객 32명이 죽고 17명이 부상했다.

신문은 그 속성상 '나쁜 뉴스'를 좋아한다(Bad News Makes Good News). 미담(美談)보다는 험한 뉴스가  더 전파력이 강하다는 얘기다. 사실이 그랬다.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보면서 우리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차든가, 이런 괘씸한 것들 하면서 화를 내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봐왔다. 그래서 신문은 밝은 뉴스보다 어두운 뉴스로 도배를 하는 것인가 보다 했다. 더구나 요즘 업그레이드 된 저널리즘에서의 뉴스는 발생보다 발굴이라던가.

한때 연탄가스나 교통사고, 또는 화재기사가 단연 지면을 장식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사건 사고보다 해설기사가 더 잘 먹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면 뭐 비하인드 스토리(Behind Story)가 없나 하고 행간(行間)부터 살핀다.

최근 언짢은 기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설마”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고, 소시민들은 배신감에 치를 떤다. 이런 ‘대형사고’들이 왜 정권 말기나 다음 정권에서나 드러날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이 정권은 괜찮을까?”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비리에 관한 사건은 국가적 망신이다. ‘대만의 짝퉁’이라고 홍콩지들 연일 대서특필하며 입방아를 찧는 모양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어서 속이 상할 뿐이다. 모든 건 사법적 판단에 의해 응분의 처벌이 있을 터인즉, 믿고 지켜볼 따름이다.

역시 신문은 연일 수사기관에서 흘러나오는 ‘나쁜 뉴스’의 언저리를 앞 다퉈 보도한다. 특종을 쫓는 뉴스경쟁은 치열하다. 그러나 예단은 금물. 너무 앞질러 가 ‘언론재판’소리를 듣지 말아야 하겠다. 지난 4월 7일은 53회 신문의 날이고 신문주간이었다. 1896년 독립신문 창간일을 기념하여 1957년부터 기념식을 가졌다. 그 날은 선언적 의미와 함께 신문윤리 강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도 모든 신문은 항상 등록번호 옆에 <본지는 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라고 분명히 밝히도록 돼있다.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의 황금비율은 없으나 ‘나쁜 은행(Bad Bank)’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은행(Good Bank)'이듯, 밝은 기사로 신문 지면을 가득 채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정영수/언론인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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