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우리한테는 도대체 왜 이렇게 정보가 없냐고요.” “보금자리 주택이라는데 우린 여기가 바로 보금자리죠.”
5월 11일 전격적으로 보금자리주택 예정지로 지정된 원흥, 도내동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술렁이고 있었다. 동네 가게에는 삼삼오오 모인 이들이 앞으로 개발이 어떻게 진행될지, 떠나야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런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된 이후 새로 지은 집으로 다음주 이사가 예정돼있다는 한 지역 주민은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새집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개발 발표가 났는데 어떻게 할거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사 안오면 어떻게 할거냐”며, “정부가 하는 일을 반대한다고 막을 수나 있겠냐”며 화부터 냈다.
기다리던 GB 해제 소식 때문이겠지만 동네 곳곳은 개발이 한창이었다. 터닦기를 하는 곳도 있고, 번듯한 건물도 여기저기서 지어지고 있었다. 흥도초등학교 주변에는 지은 지 얼마 안된 주택들이 일산의 단독주택지가 부럽지 않을 만큼 훌륭한 인테리어에 잘 가꾸어져있었다.
오히려 반듯한 도시의 주택가보다 논과 밭, 작은 야산과 농로가 자연스레 어우러진 그림같은 전원마을이었다. 최근에는 살기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마을의 가치는 실질적으로 올라간 상태라고.
“아니 이명박 대통령이 헬기타고 비닐하우스 촌만 찍었다며. 이 동네 예정지 안에는 비닐하우스는 없어. 여긴 대부분 주택지인데 어떻게 싸게 보금자리 주택을 짓겠다는 거냐구.”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부서지고, 망가지기에는 아까운 풍경이었다.
물론 지역에는 찬반의 목소리가 모두 나오고 있다. 어느 한편이 더 많다고 섣불리 이야기하기도 어려워보였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이 관 주도의 정책, 개발의 이면에서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주민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명목은 좋다. 서민들에게 저렴한 내집을 마련해주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난개발도 막고, 주거안정도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보금자리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지구 내 임대아파트 비중은 전체 주택의 35% 이상이다. 국토부는 임대 비중을 40% 안팎으로 잡고 있다. 이는 판교신도시의 임대(47%), 삼송신도시(50%)보다도 낮다.
서민주택을 위해 중앙정부는 용적률을 높이고 녹지율을 감소시켜 분양가를 주변시세의 15% 이상 낮추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은 모르겠으나 원흥, 도내동의 경우 이미 GB해제이후 거래가가 3.3㎡(1평)당 건축이 가능한 대지의 경우 400만원까지 얘기되고 있다. 보상가를 어느 정도까지 낮출 수 있을지 미지수다. 만약 시세를 반영하지 않고 법에 따라 공시지가 보상만이 이뤄질 경우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대가 예상된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개발 발표 직후 나온 고양시의 성명서에서도 보듯이 이번 개발은 지방자치단체를 철저히 배제한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보금자리주택 건설에 관한 특별법은 지구지정 권한을 중앙정부에 전적으로 부여하고 있으며 자치단체장과 협의 기간을 20일 내로 한정, 기간이 초과되면 협의를 완료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별법 내용 중 ‘절차의 간소화를 위해 지구지정 전 사전협의를 강화해 사업기간을 실제적 단축한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경기개발연구원 봉인식 연구위원은 19일 관련 논문을 통해 보금자리주택 건설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봉 연구위원은 “보금자리주택은 기존의 국민임대주택건설과 마찬가지로 실제적으로는 해당 지자체의 행정 및 재정수요 증가를 야기하기 때문에 건설시 지자체의 의견을 배제하고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백번 지당한 주장이다. 해당 지역의 갈등 문제에서부터 보상, 입주 이후 교통, 환경 문제까지 결국 개발로 인한 영향은 그 곳에 사는 이들과 지방자치단체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해도 결국 책임을 나누고 지고 갈 주체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개발, 정책은 제 길을 찾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공고, 공람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과연 어느정도 민의가 반영될 수 있는지 우려스럽기만하다. 특별법에도 사전 협의대상으로 광역 시군만을 규정하고 있어 고양시의 역할은 작아보이기만 한다. 그러나 이제라도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고 답답해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나서는 일은 고양시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목민심서는 ‘봉공육조’에서 목민관은 ‘교문(敎文)이나 사문(赦文)이 고을에 도착하면 요점을 정리하여 백성들에게 선유하여 각각 알게 하여야 한다’고 적고 있다. 자칫 보금자리를 잃을까 염려하며 밤잠을 설치고 있은 주민들을 위해 서둘러 요점을 정리해 알리고, 또 알리는 일에 고양시가 나서주길 다시한번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