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송동 주치의 혜성의원 최송옥 원장>

▲ 혜성의원의 최송옥 원장(사진 오른쪽)과 수 년 째 함께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이명주 간호사(사진 오른쪽)
삼송동 사람들이 성장하면서 한 번쯤은 꼭 들리게 된다는 병원이 있다. 삼송동 24-20번지에 위치한 혜성의원은 1965년에 문을 연 뒤 지금까지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병원의 최송옥 원장은 올해 여든으로 지난 23일에는 지역 주민, 가족들과 함께 팔순 잔치를 열기도 했다.

제대로 된 의료기관이 없던 시절에 삼송동에 문을 연 혜성의원은 병원이라기 보다는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최 원장도 단순한 의사라기 보다는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가족이었다.

“시설도 좋고, 건물도 큰 병원들이 많이 생겼는데도 여전히 이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을 보면 내가 정말 고맙지. 출산 때 내가 받아준 애들이 커서 검사가 되고 미인대회에 나가기도 하는 것을 보면 뿌듯해.”

또 한 곳에서 오랫동안 진료를 하다보니 3대에 걸쳐 혜성의원에서 진찰을 받는 환자들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집안의 병력도 꿰뚫고 있고, 길을 가다가 주민들의 얼굴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동네 주치의로 통한다.

삼송에 살다가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간 여자가 시어머니가 아프다고 모시고 오는 경우도 있고, 대학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도 최 원장의 약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고 다시 오는 환자도 있다.

주민들도 이런 최송옥 원장이 좋아서 병원 앞을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집 안에 잔치가 있어서 떡을 하거나 김장이라도 하면 양 손 가득 싸들고서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는 최 원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간다. 최 원장도 주민들의 이런 정이 좋고 이제는 한 가족처럼 느껴져 삼송동을 떠날 수 없단다.

최 원장은 의대를 졸업 후 1959년에 고양군 보건소에 부임했다. 당초에는 짧게 있을 계획이었으나 주민들과 정이 들면서 보건소장까지 지내고 퇴임 후에도 고양을 떠나기 싫어서 삼송에 병원을 개업하게 된 것이다.

당시 고양은 서양식 병·의학보다는 무속과 한의학이 주민들에게 더 익숙한 시절이었다. 최 원장이 진료 후 사망선고를 내려도 무당이 죽었다고 할 때까지는 최 원장의 말을 믿지 않았다. 또한 많은 약재를 같이 먹던 한약에 익숙한 탓인지 양약 일주일 분량을 제조해주면 한꺼번에 먹겠다는 환자도 있어 애를 먹었다.

최송옥 원장은 이런 환자들에게 거리감 없이 다가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농촌 분위기에 어울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주민들이 거리감을 갖지 않도록 단어 선택에도 유의했다. 저녁에는 고무신이나 냄비를 사서 주민들의 집을 방문하면서 신뢰를 쌓아갔다.

최 원장은 또 지역 봉사활동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새마을 부녀회에 강의를 하러갔다가 주민들의 추천으로 고양군 부녀회장을 지내고 이후에는 경기도와 중앙의 새마을 부녀회장까지 지냈다.

“다 주민들 힘이야. 부녀회장을 그만두려고 해도 열심히 봉사하는 주민들 모습을 보면서 나도 힘을 냈고, 보건소에 왔다가 여지껏 진료를 하게 된 것도 주민들의 순수한 마음 때문이었지. 난 정말 고양 사람들이 좋아. 의술이 뛰어나서 환자가 치료되는 게 아니야 의사와 환자가 서로를 신뢰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그런 신뢰가 있어. 난 고양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해.”

여든의 최송옥 원장은 고양 사람들 때문에 행복하다는 말을 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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