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의/경기도교육위원

지난 5월 6일 경기도교육청 건물 중앙에 걸려 있던 교육지표 현판이 바뀌었다. 주민직선으로 당선된 김상곤 새 교육감이 취임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첫 변화이다. 지난 4년 동안 걸려 있던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글로벌 인재 육성’이 내려지고 대신 ‘더불어 살아가는 창의적인 민주시민 육성’이 새로 올라갔다. 교육지표 현판이 걸린 자리는 똑같지만 그 글귀가 지향하는 의미와 내용은 사뭇 다르리라.

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의 건물이나 구령대 지붕에는 어김없이 교육과 관련된 구호가 많이 붙어 있다. 우리 교육이 지향하는 목표나 방향, 의지가 담긴 이상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구호가 적힌 현판 못지않게 학교 정문의 머리에 나붙은 현수막도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 확 띄게 마련이다.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널리 알려야 할 행사나 자랑할 만한 일을 스스로 나서 현수막으로 알리는 것이야 얼마나 바람직한가. 그런데 때때로 어떤 현수막 내용들은 전시 효과에 이끌려 오히려 학교교육을 왜곡하거나 잘못 이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더욱이 교육적 가치나 학생들의 정서를 깊이 고려하지 않고 실적을 과시하려는 의욕이 앞서서 무분별한 경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지금 중고등학교 정문에 가보면 지난 4월초부터 교문 머리에 올라온 학교폭력 신고 현수막이 있다. 6월 15일까지 두 달여 동안 내걸리는 이 현수막에는 ‘00년 학교폭력 자진 신고 및 피해 신고 기간’이라는 글귀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그리고 신고 기간, 기관의 전화번호 따위를 적어놓고, 자진 신고는 처벌을 완화하고 피해 신고는 비밀을 보장해 준다고 한다. 이런 현수막을 학교마다 교문에 걸어놓다 보니 일반 사람들에게는 마치 학교가 무슨 폭력의 온상쯤으로 비춰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 문구도 지난 시대에 경찰서 앞에 걸려 있던 ‘간첩 자진 신고, 총기 자진 신고’ 같은 으스스한 용어 아닌가?

이처럼 협박하는 투의 현수막을 건다고 해서 학교폭력이 줄어들고 사라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걸 보고 얼마나 신고가 들어오는지도 의심스럽다. 경찰서와 교육기관이 합동으로 학교폭력을 강력히 단속하고 처벌한다는 것을 겉으로 내보이려는 자기만족 행정일 뿐이다. 더구나 우리 꽃같은 아이들이 아침저녁으로 드나드는 교문 앞에 이런 살벌한 내용의 현수막은 가슴을 답답하였다. 그래서 도교육청 담당부서에 문제를 지적하자 앞으로 글귀를 학생들의 정서에 맞게 고치고 현수막 거는 위치도 조정하겠다고 한다.     

고등학교와 대학 입시철마다 학교 앞에 나타나는 합격자 현수막은 어떤가? 특목고 입시전형이 끝나면 중학교 앞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합격자 명단 현수막이 휘날린다. ‘축 특목고 00명 합격’이라는 글귀 옆에는 과학영재고, 자립형사립고, 국제고, 과학고, 외국어고에 들어간 아이들 명단이 주르르 올라 자랑을 한다.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마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대형 현수막에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권 4년제 대학교, 교육대, 의학과, 한의학과의 합격생 명단을 빼곡하게 실어 놓는다. 심지어 대학 서열에 따라 명단의 글씨 크기도 다르다.

입시철에 거리를 오가다 학교 앞에 걸린 이런 현수막과 마주칠 때면 천박한 우리 교육현실에 서글퍼진다. 어쩌다 학교라는 곳이 학원처럼 입시성적을 현수막으로 휘날려야 인기를 끄는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학교가 성적이 우수해서 척척 상급학교에 합격하는 아이들만 다니는 곳인가? 현수막 아래를 오가는 시험에 떨어지거나 인기학교에 못 간 아이들의 심정은 왜 헤아리지 못하는가? 결국 학교의 입시 실적 과시 놀음에 비인간적인 경쟁을 부추기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더욱 절망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 아닌가. 오죽하면 광주지역에서는 학부모단체가 나서서 이런 입시합격 현수막 걸지 않기 운동을 벌였을까 싶다.  

학교의 현수막은 걸리는 자리가 학생들이 드나드는 교문 앞이라서 그 영향력과 상징성이 상당히 크다. 그 글귀 한 마디가 학교 구성원들의 의식이나 지향을 상징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학교 앞에 걸리는 현수막의 용어와 내용에 좀더 관심을 갖고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바람직한지 따져 보았으면 좋겠다. 학교운영위원회나 교무회의 같은 자치기구에서 의논하고 문제점도 밝혀서 ‘상급학교 합격자 명단’ 같은 것들은 걸지 말았으면 한다.

‘학교폭력 자진 신고’ 같은 글귀도 아이들의 정서에 알맞게 다듬고 고쳐야 한다. 학교 앞 현수막 한 장에도 우리의 시민 의식과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당신도 학교 앞을 지나가다 비교육적인 현수막을 보거든 학교 탓만 하면서 눈 흘기지 말고 전화라도 돌려서 의견을 밝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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