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동 자동차 관리소 기능장 임근영

▲ “많은 세월 한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자동차 기능으로는 최고의 자리인 기능장의 자리에 오른 것이 큰 자부심이다”라고 하는 임근영 기능장.
“자동차 정비에 입문한 지 20여 년 동안 오직 자동차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언제나 옷은 기름으로 얼룩지고 손은 까맣게 되어도 주변에서 자동차 정비 박사로 입소문이 난 임근영(44세 908-2777) 기능장.

“많은 세월 한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자동차 기능으로는 최고의 자리인 기능장의 자리에 오른 것이 큰 자부심”이라는 임 기능장.

그는 나비축제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전남 함평이 고향이다. 시골에 있는 농업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농업기계라는 과목을 흥미롭게 하였고, 졸업 후에는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짓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무렵에 쇠고기 파동이 크게 일어나서 비싸게 구입한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송아지보다 개가 더 비쌌다고 한다.

부모님의 반대로 농사를 포기하고, 서울 상경을 위하여 광주의 자동차 정비학원에 등록한 것이 정비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어렵지 않게 자동차 정비 2급을 취득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본격적으로 자동차 정비를 시작하였다”고 하는 임 기능장.

요즘처럼 정비교재나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아서 실력이 좋다고 소문 난 곳을 찾아가 배웠다고. 처음엔 생계를 유지하려 시작하였지만, 지금 현재에 와서는 한 순간이라도 자동차를 떠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좀 더 실력을 쌓기 위하여 문을 두드린 곳이 인천 폴리텍2대학 기능장 과정인데, 몇 년 동안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작년에 합격하여 공부하던 중 6월에 기능장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잠을 아껴가며 야간부에서 공부를 하고 집에 와서도 밤을 지새우며 가족의 힘으로 기능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고 하는 임 기능장.

장인어른이 시골 옆 동네에 살면서 성실한 사윗감으로 ‘찜’하고서 딸인 아내와 부부의 연을 맺게 해주었고, 세 명의 딸이 태어났다. 늘 최선을 다하는 아빠를 최고로 여긴다는 세 딸과 아내는 정성이 가득 담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종종 정비소에 찾아와서 응원을 한다고.

특히나 초등 2학년인 큰 딸은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가면 고사리 손으로 어깨와 다리를 풀어주며 의젓하게 맏이 노릇을 하는 것이 대견스럽다고. “시골 밭둑에서 파릇파릇하게 자라난 쑥으로 맛난 떡을 해서 보내주시는 연로한 부모님의 마음이 무척이나 고맙고, 힘든 것도 잊게 된다”는 임 기능장.

‘임근영 제43회 자동차 정비 기능장 합격’, ‘오토매니저 클럽 일동’이라는 펼침 막이 정비소에 내걸려서 처음 온 사람도 든든한 마음을 갖게 한다. ‘오토매니저 클럽’은 전국의 실력 좋은 정비사 90여 명이 교육을 통하여 정보를 교류하는 장이라고 했다.

지난해 장항동에서 정비하다가 올해 1월에 백석동 일산병원 부근으로 옮겨와서도 독립적으로 정비를 하다 보니까 휴일이 따로 없다고 하는 임 기능장. 한결같이 뚝심 있는 성격으로 성실하게 일하여서 직장인 K씨를 비롯하여 10년 넘은 단골들은 옮겨 다녀도 꼭 따라다니고 있다.

그는 기본적인 점검을 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된 것이 가장 안타깝다며, 평소에 정기적으로 엔진오일, 미션오일, 부동액, 브레이크액 등을 정기적으로 점검 한다면 자동차를 오래 탈 수 있는 비결이라고. 또한 “문제가 발생한 자동차를 새벽녘까지 꼼꼼히 정상적으로 수리를 하여서 운전이 생계와 직접 연결된 운전자에게 건넬 때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다시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을 보는 것은 최고의 보람으로 느껴진다”고 임근영 기능장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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