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양영숙 전임 일산서구청장

40년 공직생활 마치고 귀환, 최초 여성구청장

 “저녁이면 녹초가 되어 들어오셔서는 칠흙같은 밤에 소리없이 들썩이던 그 고단한 어깨. 소리가 너무 작아 몇분 동안 가만히 앉아 확인해야만 했던 그 흐느낌들. 아침이 되면 다시 여장부로 태어나야만 했던 그 슬픈 당당함 … 강산이 네 번 바뀌고, 대통령이 여덟 번 바뀌고, 월드컵이 열 번 열렸을 그 시간동안 우리는 당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지금 이순간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엄마,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지난 25일 퇴임식을 마다하고 직원들과 함께하는 장기자랑 시간으로 대신한 자리, 양영숙 전 일산서구청장(59세)의 큰 딸 이화선 씨의 글은 모두를 울렸다. 결혼해 첫 아이를 낳은지 한달밖에 안된 화선 씨의 글은 양 구청장의 후배 여성 공무원이 대독했다.

편지에서 화선 씨는 어린 시절 비가 오는 하교길에 아무리 기다려도 우산을 가져오지 않던 엄마 때문에 서운했던 기억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씩씩한 가장으로, 고양시 최초 여성국장, 여성 구청장으로 존경받는 공무원으로 헌신한 어머니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양영숙 구청장은 1969년 7월 동두천 시청을 출발로 39년 11개월 15일 공직생활을 해왔다. 76년 고양시로 옮겨와 당시 화전출장소부터 부녀계장, 시민과 민원계장 등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왔다. 94년 사무관 시험에 합격해 여성과장으로 진급하고, 행신1동장, 의회 사무국장, 환경경제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겉으로는 순탄한 승진과 삶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려움도 많았다.

마포경찰서 경찰이던 남편이 86년 순직한 것이다. 당시 둘째 딸이 태어난지 겨우 한달이 지난 때였다.
 “우리 딸들에게 정말 미안하죠. 따뜻하게 해준 기억이 없어요. 사무관 시험을 볼 때는 우리 딸이 고3이었는데 같이 시험공부를 하니 제대로 해준 게 없어요. 그래도 우리 딸들이 정말 잘 커줬어요.”

언제나 당당하고 씩씩한 인상의 양영숙 구청장도 딸들과 옛이야기 앞에서는 여지없이 눈시울이 불거졌다. 
일산서구청장으로 양영숙 구청장은 정말 특별했다. 의식적인 행사는 배제하고, 구청장실도 최대한 개방했다. 웃음교육 특강을 직접 배워 직원들 앞에서 선보이며 웃는 일을 적극 권장했다.

 “감성적 리더십이라고 하죠. 잘못한 걸 야단치기 보다는 격려를 앞서가서 해줬죠. 생일 때되면 떡이라도 집에 보내주면 가정에서 우리 남편이 이렇게 대접받는구나 생각할 거 아닙니까. 친절부서 선정해서 저녁먹고, 정기 회식 대신 영화보고.”

재활용품 정리를 잘한 부서를 선정해 함께 영화를 보러가기도 했단다. 덕분에 사회복지, 행정서비스 분야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주민자치위, 부녀회, 통장단 등 주민조직들도 항시적인 만남을 주선해 의견을 듣고 구청의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다. 40여년 치열하게 살아온 공직생활을 갑작스레 접고 나서 서운하진 않을까?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어요. 만인에게 기쁨을 주는 일해보고 싶습니다.”

고양시 최초의 여성구청장에서 이제 또다른 최초, 최고를 꿈꾸며 그녀가 준비하는 제2의 인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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