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기간 애착 비례, 자족도시 원해

1989년, 600여만평의 거대한 마을·논·산 등을 뒤바꾸어 놓을 일산신도시개발 소식에 당시 고양군민들은 격앙됐다. 신도시 개발로 피해보는 것은 결국 원주민이라고 생각했다. 개발은 진행됐고 입주가 시작됐으나 초기 일산신도시에 입주한 이주민들은 고양시민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일산신도시 주민들이 분당과 함께 신도시만을 떼어 독립시켜달라는 '독립시 운동'을 전개하게 되자 신구 주민간의 갈등은 극에 달하기도 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이제 아파트에는 이주민, 토박이가 아닌 고양시민들이 산다. 고양을 고향으로 아는 2세들도 태어났다. 이들은 살기좋은 일산, 가치있는 고양시를 위해 러브호텔 반대, 친환경 활동,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기꺼이 고양시민이기를 자처하게 됐다. 토박이들 상당수는 바로 그 아파트에 살면서 주민자치위원, 지역유지로 지역에 기여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산신도시, 옛 것을 허물고 한순간에 새운, 역사에 유래가 없다는 새 도시는 20년만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 개발과 도시공동체 형성의 중요한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일산신도시의 20주년을 사람들의 삶과 공동체라는 주제로 담아보고자 한다. 

특별 취재팀 = 김진이 부장 박기범 윤영헌 기자

Ⅱ. 일산신도시가 발표됐다
Ⅲ. 떠난 사람들, 개발의 뒤안길 
Ⅳ. 이주민, 이제는 고양의 주인이 되다
Ⅴ. 대한민국 첫 신도시, 미래의 고양 

<일산신도시 20주년 설문조사>
조사대상 :  20대 이상 고양시민 1000샘플(표본오차±3.1P,95%신뢰수준)
표본추출방법 : 인구비례할당에 따른 무작위 추출법
조사일시 : 7월 8일~ 9일
조사기관 : (주) 쎄이폴

<1000명 고양시민 20주년 설문조사>

“일산, 살기 좋죠. 그렇지만 이웃간의 정은 없어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바뀌니 안타깝죠. 직장까지 교통이 좀 불편하고 교육비도 많이 드는 편이니까요. 주변에 보면 한 2년마다 움직이는 것 같아요.”(대화동 이상열 주민자치위원장. 1996년 일산 입주)

“박힌 돌 뽑아내고 굴러온 돌 잘사는 게 신도시 개발이냐고 소리소리 질렀지요. 어디 옛날 표식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엔 대부분 집성촌이라 단결이 잘됐는데, 지금은 글쎄요….”(1989년 일산신도시 반대 주민대책위원장을 지낸 설원규씨. 조상대대로 살아온 토박이.)

사람사는 곳에는 언제나 좋은 것보다는 불만이 더 많다. 일산신도시에 대한 평도 그렇다. 특히 토박이로 대대로 살아온 이들은 어렵게 지켜오고, 혹은 쫓겨났기 때문인지 속깊은 아쉬움을 드러낸다. 그러나 떠나겠느냐는 질문에는 75.8%의 토박이들이 “계속 살겠다”고 답했다. 전체 답변자의 62%, 이주민 59.7%와 비교되는 수치다. 일산에 이사온 지 5년 미만인 경우 43.9%, 5년~10년 32.4%, 10년~15년 29.6%, 15년~20년 12.9%의 답변자들이 떠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일산은 오래 살아야 그 맛을 아는 도시인 모양이다. 반대로 5년 미만 44.1%, 5년~10년 56.3%, 10년~15년 59.6%, 15년~20년 79.1%가 고양시에 “계속 살겠다”고 답했다.

토박이 75.8% “계속 살겠다”
고양신문은 지난 7월 8~9일 양일간 전문 여론조사 업체 (주)쎄이폴의 도움을 받아 20대 이상 고양시민 1000명에게 일산신도시 20주년의 삶을 되짚어보는 설문조사(표본오차±3.1P,95%신뢰수준)를 실시했다. 설문결과는 흥미로웠다. 거주 시간에 따라 일산에 대해 느끼는 감흥과 문제의식이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1000명중 신도시 개발 전부터 29.6%(297명)가 살았다고 답했다. 5년 미만 20.7%(207명), 5년~10년 23.6%(236명), 10년~15년 18.1%(181명), 15년~20년 8%(80명) 순이었다.

일산 이주 전 거주 지역은 서울시 52.9%(529명), 고양시 24.4%(244명), 고양시제외 경기도 12.6%(126명), 서울. 경기제외 기타 지역 10.1%(101명)이었다.

일산신도시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다. 전체 49.4% 시민들이 80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주었다. 100점도 8.1%나 됐다. 50점 이하는 14.7%였다. 거주기간에 따라 만족도 차이가 컸다. 5년 미만의 경우 44.5%가 80점 이상을 주었고, 5~10년 47.9%, 10~15년 60.6%, 15~20년 55.5%순이었다. 토박이와 이주민으로 나누어 분석해보니 100점 만점은 이주민 6.5%보다 토박이들이 13.9%로 더 많이 주었지만 80점 이상은 토박이 49%, 이주민 52.1%로 별 차이가 없었다. 20년은 더 이상 토박이와 이주민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 셈이다.

일산은 왜 살기 좋다고 느낄까. 쾌적한 환경(39.2%), 편리한 교통(16.9%), 풍부한 문화시설과 문화행사(12.5%), 편리한 쇼핑 외식 등 소비생활 여건(10.2%), 좋은 교육여건(3.7%), 역사와 전통(2.5%) 순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를 거주기간별로 분석하면 조금 차이가 난다. 토박이들은 편리한 교통을 28.1%로 단연 1위로 꼽은 반면 이주민들은 쾌적한 환경을 44.2%로 가장 좋다고 답했다.

토박이는 편리한 교통, 이주민은 환경
연도별로 보면 5년 미만의 경우 쾌적한 환경이 32.7%로 가장 좋았고, 문화시설과 행사가 15.3%로 뒤를 이었다. 5~10년은 53.6%가 단연 환경이 좋다고 꼽았다. 10~15년 거주 시민 역시 48.6%로 쾌적한 환경을 1위로 꼽았지만 2위는 편리한 교통(13%)였다. 오래 거주한 시민들은 교통이 편리하도고 꼽았지만 10년 이내 거주 시민들은 상대적으로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여건은 거꾸로 5년 미만, 5~10년 거주의 경우 5.1%, 3.6%가 좋다고 답했지만 10~15년 1.8%, 15~20년 거주 시민들의 경우 1%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역사와 전통을 이유로 든 경우는 토박이 5.6%, 이주민 1.3%로 차이가 있었다.

이웃들과 소통하는 공간은 어딜까. 아파트의 도시답게 아파트단지가 30.4%로 단연 1위. 문화센터(13.6%), 종교시설(13.8%), 각종 단체(12.3%)가 뒤를 이었다. 거주정도에 따라 보면 다시 흥미로운 분석이 나온다. 2위부터 조금 차이가 난다. 토박이들의 경우 단체(15%), 문화센터(12%)가 2, 3위를 차지한 반면 이주민들은 종교시설(15.2%), 문화센터(13.2%)가 뒤를 잇는다. 특히 10~15년 거주민들의 경우 종교시설 비중이 20.1%로 매우 크게 작용하고 있다.

샘푸리 장성회, 옛 마을모임 지금도
다음이나 네이버 등 일산 주민들이 주로 가입돼있는 카페 게시판에는 “일산으로 이사 왔는데 교회를 어디로 가야할지 소개해주세요”처럼 종교시설을 찾는 문의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사를 자주 하는 신도시 주민들에게 종교는 만남과 소통의 공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박이들의 경우 사는 곳은 달라도 옛 이웃들과의 만남을 계속 해오고 있었다. 이전 산황리에 살았던 이규환 마두2동장은 토박이들의 마을 모임인 샘푸리회에 참석한다. 정기 모임도 있지만 수시로 시간되면 만나 옛이야기도 나눈다. “아파트 문닫고 옆집 일에 상관않는 신도시 사람들과 달리 토박이들은 그저 얼굴만 봐도 정겹기” 때문이다.

대화동 일대의 옛 지명인 장성마을사람들은 장성회란 이름으로 1년에 한번 장성공원에서 100여명이 모이는 큰 행사를 갖는다. 20년 동안 빠짐없이 열렸다. 가까이 사는 이들은 시간 날 때마다 장성공원에 모여 술도 마시고 안부도 묻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구분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대화동 주민자치위원이자 적십자봉사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선자씨는 일산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1998년 고향인 대전에서 이사왔을 때는 황량하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남편 때문에 옮겨왔어요. 쾌적한 환경이 맘에 들었어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탄현동에서 IT회사를 운영하게 됐는데, 그 일을 계기로 지역 활동도 시작했죠. 학교운영위원회 일도 하고. 지금은 제2의 고향으로 계속 살아갈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불만이 없는 건 아니다. 취재과정에서 토박이와 이주민으로 나누어 만난 40여명의 시민들은 비판과 지적도 아끼지 않았다. 계속된 개발로 인한 교통문제, 인구유입 대책들을 지적했다. 그중에서도 경제도시, 자족도시로의 아쉬움이 컸다.

고양이 고향인 대화동 김근배씨는 “사람 살기좋은 도시이긴 하지만 여전히 베드타운 아닌가. 생활복합도시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경제도시로 발전해야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 대화동 김정규씨처럼 “교육도시로 후손들의 미래를 보장해주고, 떠나지 않는 도시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그 뒤를 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어쩌면 1기신도시의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분당, 일산신도시 개발계획의 밑그림을 그려낸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안건혁 박사는 “원래 계획에서 분당, 일산신도시는 서울로부터 많은 고용시설을 유치하도록 되어있었으나 정부나 개발자인 한국토지공사의 전략부제로 서공하지 못하였다”며 “당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공기관 100여개가 이전을 원했지만 정부의 예산이 뒤따라주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고 술회했다. 유치가 예정돼있던 출판단지는 높은 지가를 감당할 수 없어 파주로 방향을 틀었고, 고용창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초기 입주자 대부분이 서울에 근거를 두고 주택마련이나 투자 목적으로 이주해오면서 교통문제 발생은 필연적이었다는 지적이다.

올해로 임기 7년째를 맞는 강현석 시장도 녹색도시, 쾌적한 환경도시로의 이미지에는 만족하면서도 “고양의 가치가 분당은 고사하고 용인보다도 저평가되어있는 현실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지역발전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번번이 정부의 규제와 제도 앞에서 무산돼왔기 때문이다.

이제 20년, 살기좋은 도시 일산에 공감대를 얻어낸 시간들이었다면 앞으로의 시간들은 또다른 도약이 계속될 것이다. 파헤치고, 갈아엎는 동안 생긴 상처와 갈등이 아물고 치유되어 편안함이 찾아왔다. 앞으로의 시간들이 보여줄 위대함을 위해 또 많은 이들의 노력과 열정이 담겨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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