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살며 아태재단 설립, 대통령 꿈 이뤄

▲ 지난 22일 미관광장에 차려진 고 김대중 대통령의 분향소에는 새벽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분향하며 역사의 큰 획을 그었던 김 대통령의 가시는 길을 애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나보낸 고양시민들의 마음은 한층 더 애틋했다. 고양은 김 전 대통령이 동교동처럼 오랜 시간을 머문 곳은 아니었지만,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의 꿈을 이루고 인생의 절정기를 보낸 곳이었다.
아태재단을 설립해 국경을 넘어 선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곳도, 남북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햇볕정책을 탄생시킨 곳도,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된 곳도 바로 고양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고양에 살았던 시기는 불과 3년여에 불과하다.

1993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나 1년간 연구활동에 전념하고 돌아 온 김 전 대통령은 1994년 아태재단을 설립하고 1995년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새로운 정치인생을 시작하면서 선택한 상징적인 공간이 바로 고양의 일산이었다. 정발산 자락 단독주택에 새 집을 짓고 처음으로 동교동을 벗어난 김 전 대통령은 모든 역경을 이기고 인생의 절정기를 일산에서 맞았다. 김 전 대통령이 일산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혹자는 북한산에서 정발산, 한강으로 이어지는 명당, 대통령이 탄생할 땅을 보고 선택했다는 설을 이야기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원대한 정치적 구상 속에 일산을 배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의 남북문제 특별담당을 지낸 최성 전 국회의원은 “정계은퇴 후 아태재단을 설립해 남북문제에 주력하면서 상징적인 공간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고양 이었다”며 “고양에서 햇볕정책이 구상됐고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과의 교류가 이루어 졌다”고 말했다. 최성 전 의원은 “남과 북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고양에서 남북교류협력의 새로운 중심을 만들어가겠다는 원대한 꿈을 키웠고 대통령의 꿈, 정권교체의 소원도 함께 이뤘었다”고 회고했다.

1998년 2월 제15대 대통령 취임직전까지 살았던 일산 집은 한때 화화주택이란 여론의 화살을 맞았지만 실제 일산 집은 다른 일반 주택과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주택이었다. 평소에 전통 한옥 목조주택을 짓고 싶어 했던 김 전 대통령은 건축비가 과다해 목조주택을 포기하고 양옥 건물에 기와만 올린 변형된 주택을 짓게 됐다고 한다. 당시 건축설계를 맡았던 정민철 소장(이재종합건축)은 “고양에 있는 건축사에 설계를 맡기라는 지시로 대통령의 집을 설계하는 영광을 얻었었다”며 “대통령은 특별히 따뜻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따랐었다”고 기억했다.

동교동이 수난과 역경의 상징이라면 일산은 김 전 대통령의 인생에 가장 큰 꽃을 피운 봄을 맞은 곳이었다. 많은 고양사람들은 김 전 대통령을 이웃으로 기억한다. 한 동네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던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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