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말이 요즘 들어 얼마나 새삼스럽게 다가오는지 모른다. 인간은 또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 관계가 삐거덕거리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우울증 따위의 병에 걸리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소통에 대한 얘기를 참 많이 한다. 그런데 갈수록 소통의 어려움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 소통이 매우 어려운 모양이다. 소통이 안 되니 더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아이러니가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인 것 같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다른 이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극한 상황에 다다르는 걸로 안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 자기의 얘기만 털어놓을 수 있어도 그런 결정을 하지는 않을 텐데 안타깝다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연락할 누군가가 없는 사람은 죽을 정도로 외롭지 않지만 전화기에 저장 된 수많은 이름들 가운데 연락할 누군가를 찾지 못하면 그 외로움이 훨씬 더 크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생기가 막히는 현상을 양기당격(陽氣當隔)이라고 한다. (양)기운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적체되면 병에 든다는 얘기다. 소통은 대체로 두 종류로 나뉜다. 가족끼리의 소통인 개인적 소통 그리고 사회적 개념 차원의 공적인 소통이다. 인간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것은 대부분 개인적인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이긴 하겠지만 사회병리 현상으로 공적인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집단 우울증 비슷한 증상을 앓기도 한다.

사회가 변화되어가는 과정에서는 소통해야 할 일들이 훨씬 많아진다. 이 소통의 중심에는 권력자가 서 있는데 권력자의 마인드에 따라 사회적 소통이 원활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 훌륭한 지도자는 어떤 식으로든 국민의 소리와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적 이해를 구하게 될 것이고 비록 경제적으로는 좀 어렵다 하더라도 사회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긍정적인 기운이 충만하게 될 것이다. 

변화라는 것은 꼭 좋은 쪽으로 오는 것만이 아니다. 그간 누리던 자유를 억압 받기도 하고 또 하고 싶은 말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사회적 저항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느 한 쪽의 희생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한 변화를 누군들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우리민족은 자아가 매우 강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언제나 잘못 된 권위에 도전해왔다. 물론 그 도전의 역사는 독재자들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혔고 남은 건, 피로 얼룩진 역사뿐이지만 그래도 늘 끊임없이 저항해왔다.

때로는 집단적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지금까지도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가장 먼저 촛불로 자기의사를 표출하는 적극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여전히 그 촛불은 타올랐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만다. 촛불로 드러나는 민심은 한 번도 그 답을 듣지 못했다. 그야말로 소통의 부재다. 나는 이런 일들이 우리민족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지 않을까 걱정한다.

사회적 소통이 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집단 병리현상인 자살자 급증으로 이어질까봐 두렵기도 하다. 그런데 얼마 전 통계자료에서 그 걱정이 현실로 드러났음을 보고 정말 서글퍼졌다. 양기당격인 경우에는 격자당사(隔者當瀉)만이 살 길이다. 풀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풀길이 없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메아리조차 없는 막막함이 이 사회를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다. 참 답답한 일이다.

사회적 소통이 안 되는 사회에서 그나마 개인적으로 소통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사람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죽음을 택하고 만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언론보도를 통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얼마 전에는 아무 일 없이 그저 단란하게 사는 줄로 알았던 가정의 부인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걸 보면서 우리사회의 소통부재가 얼마나 심각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아주 약하고 힘이 없는 존재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모여 국가를 이루고 그 국가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 존재가 부정당하고 무시 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사람을 업신여기는 풍토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소통하지 못한다. 소통이 되지 않으니 기운이 막히고, 그래서 분노가 폭발하기 일보직전이다. 이제라도 작은 숨 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한 공간을 말이다. 그게 소통하려는 자의 기본 태도다.

왜 우리는 이렇게 남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 돈(밥)뿐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다. 이제라도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고광석 편집위원장/ 대명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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