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수난사고 보상 협상이 11일 타결됐다. 한국수자원공사와 연천군, 유족 측은 지난 10일 사망자 1인당 5억원 가량을 지급하는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했다. 유족 등 피해자들의 슬픔과 고통이 보상 협상타결로 조금이나마 위로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사고 원인을 면밀히 살피고 대책을 강구하는 일은 산 사람들의 몫이다. 

이번 사고의 원인은 두 가닥으로 규명해야 한다. 하나는 북측의 책임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남측 관계 당국의 과실여부다. 외교통상부는 11일 북측이 ‘황강댐을 무단방류했다’면서 "이번 북한의 조치는 국제관습법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자국의 영토를 이용함에 있어 타국의 권리, 이익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국제관습법으로 확립된 원칙이라면서 실효성 문제 등을 감안해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고의 두 번째 원인이었던 남측 관계기관의 업무 과실에 대한 수사 결과도 그 윤곽이 드러났다. 경보시스템의 고장과 담당자들의 늑장 대응이 그것이다. 경찰은 임진강 사고 이틀 전부터 사고 직전까지 무인자동경보시스템 서버에서 수자원공사 담당 직원에게 수 십 차례에 걸쳐 시스템 이상을 알리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발송된 사실을 밝혀냈다. 또 재택근무자는 연천군의 연락을 무시하다 뒤늦게 본사의 연락을 받고 나와서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화를 키운 것으로 밝혀졌다. 임진강 참사를 수사 중인 연천경찰서는 3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해 형사입건할 방침이다. 남측 관계 당국이 범한 과오가 시정되면 향후 유사한 비극을 방지할 안전판 하나가 마련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 대한 외교부의 입장 표명과 대책은 납득할 수 없는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국제관습법 위배라면, 북측이 ‘수공’과 같은 형태로, 남측에 피해를 줄 목적으로 댐 방류를 했다는 사실관계가 밝혀져야 한다. 현재 북측이 댐 방류 사실과 향후 재발방지를 밝혔을 뿐 침묵하고 있지만 사고 발생 후 밝혀진 최근 북측의 댐 방류 사례를 보면 남측을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지난 9일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에서 "북한은 지난 8월 27일 초당 7400t의 물을 2시간 동안 방류하는 바람에 (임진강) 군남댐 건설현장 일대의 물이 불어나 크레인이 잠기고 임시 교량이 끊기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정부가 이런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8월에 방류한 물이 지난 6일 사고가 발생한 날의 초당 1400t의 5배가 넘는 양이지만 인명피해 등의 큰 사고가 발생치 않았다. 따라서 북측의 댐 방류로 6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해서 수공으로 주장하기 어렵다는 측면이 있다. 

둘째, 이번 사고에 국제관습법 위배를 들고 나온 것은 남북관계를 분단 상황의 특수 관계로 보지 않고 국제사회의 규범으로 규정하겠다는 의도를 강하게 나타낸 것이다. 이런 태도는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전혀 인정치 않는 것으로 개성공단 생산물 수출품에 대한 무역 분쟁을 일으킬 위험성이 있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수출품이 현재 많은 국가에서 한국산으로 인정받아 특혜 관세를 적용받아왔는데 이것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외교부가 국제관습법 위배를 주장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북측 조문단을 만나 "남북관계를 국제적 보편타당성 원칙에서 다루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언급, 과거 정권처럼 남북관계를 민족간 특수관계로만 다루지 않고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제관습법은 국제법, 일반조약의 원칙과 국제사법재판소, 유엔 등이 국제법의 주요 근거로 인정하는 국제관습을 한데 모은 것이다. 국제관습법은 국제 사회와 국제사법재판소가 인정하고 세계가 준수하는 규범이다. 국제관습법은 폭력, 인류에 대한 범죄, 전쟁 범죄, 약탈, 학살, 노예화 등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국제관습법은 구체적 사안으로 들어가면 아직 많은 이견이 존재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국제관습법에 의한 문제제기는 향후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소지가 크다.   

셋째, 남측 정부 당국이 이번 사고와 관련해 근거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대북 공세의 강도를 높이는 태도다. 남측 정부는 사고 발생 직후에는 온건한 태도를 보이다가 수구언론 등이 북한의 악의적 방류 의혹을 제기하면서 정부 ‘안이한 대응’을 비난하자 강경 자세로 돌변, 북측에 확인되지도 않은 혐의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북측이 의도적으로 방류했다’는 식으로 근거도 없이, 논란만을 부를 발언을 했다. 남측 정부는 북측이 최근 금강산, 개성 관광 및 이산가족 상봉 재개, 특사 조문단 파견 등을 통해 남측에 적극적인 태도로 교류를 제의했지만 남측 정부는 여전히 차가운 반응을 보일 뿐이다. 통일부 장관은 북측이 전술적 변화만을 보인다면서 지난 1년 여 동안 지속했던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남측 정부의 최근 태도는 북측의 적극적인 유화적 태도에 찬물을 끼얹는 식으로 비춰진다. 북측이 먼저 구체적으로 대화를 제의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태도다. 이번 사고를 국제관습법으로 문제 삼는다고 한 것은 대북 고자세의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인 것이다. 이런 태도는 바람직스럽지 않다. 북미가 오랜 줄다리기 끝에 직접대화를 시작할 여건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지는 상황이다. 남북관계가 지금과 같은 상태를 지속하면 남측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국제적 공론화 과정에서 미국의 뒤꽁무니만 쫓는 모양이 된다. 결국 통미봉남 현상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적극적인 남북관계를 통해 남북이 북미, 북일 관계와 6자회담을 선도하는 것이 최선이다. 남북은 임진강 수난 사고와 같은 유사한 비극을 막기 위해 적극 접촉해야 한다. 남북은 평화체제가 아닌 정전체제 속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 비극이 발생할지 모를 많은 분야에 대한 대화가 필요하다. 

외교부가 국제관습법을 거론한 11일 북측은 개성공단 임금 4배 요구를 전격 철회하고 예년 수준인 5% 인상안을 대신 제시해왔다.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은 단호하고 일관된 대북 기조를 유지해야 북핵 문제를 포함한 남북 관계를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향후 남북 관계가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속단키 어려운 상황이다.

 

고승우/미디어오늘 논설실장(ⓒ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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