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버티고 선 고양의 주산

새도시가 들어서기 전 일산은 논과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산에 아카시아 나무가 울창했다. 봄이면 그 아카시아 꽃을 따 먹으며 돌아다니고 계곡에서 가재를 잡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엔 일산이 이렇게 넓은 평지라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어느 언덕을 오르건, 어느 계곡을 찾건 간에 그곳의 우리들 유년의 놀이터였으므로….

아파트가 들어서는가 싶더니 한 쪽에 넓은 호수까지 마련된 근사한 새도시가 완성되고 나서야 새삼 느꼈다. 너른 평야 밀어내고 아파트 숲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산이라고 이름 붙었지만 그 규모가 작아 놀이터로선 성에 차지 않은 정발산 대신 고봉산을 주무대로 온갖 놀이를 하며 놀았다.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봉산은 우리들에게 놀이터였고 학습장이었다. 고봉산 계곡에 물이 흐르던 시절, 우리는 그 품에서 유년을 보낼 수 있었다. 미역도 감고 고기도 잡고 산 여기저기를 친구들과 돌아다녔다. 다 자라서 서울로 대학 다닐 때도 아직 시골이었던 일산 촌놈으로서는 서울이 낯설기 이를 데 없었건만, 158번 버스가 원당을 지나 일산을 들어설 때 고봉산 철탑이 보이면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다.

이제는 딸 아이 둘과 함께 고봉산에 오른다. 개발로 많이 깎여 나갔다. 깍여진 개발의 상처에 가슴이 저려온다. 예전의 고봉산이 아니지만 딸 녀석들은 거기서 무엇이든 발견하고는 신기해한다. 내 어린 시절 스승이었던 고봉산은 이제 내 딸들에게 스승이다. 봄에 온갖 꽃들이 피고 지는 산, 가을에 색색의 단풍이 가슴 설레게 했던 산, 호기심으로 바라보던 작은 절, 아이들은 그런 것들을 바라보며 자연과 사람이 사는 이치를 배운다.

날이 따뜻해지면 맨발로 고봉산을 올라 볼 작정이다. 차갑거나 따뜻하거나 단단하거나 부드럽거나 머리끝까지 전해져 오는 고양시 주산의 기운을 받아보리라. 그리곤 우리들 유년의 추억들이 한참 자라고 있는 어린이들에게도 전해지기를 소원해 보리라.

<조기현·고양자치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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