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지역인사·공무원 때마다 '인사'

ㅎ개발 50만원, ㅅ공장 50만원, ㄷ건설 30만원, ㅎ건설 50만원…불우이웃돕기 성금전달. ㅇ과장 10만원, ㅁ과장 10만원, 시험위로금조로 반환. ○○씨 양주, ○○씨 갈비, 반환. ㅇ건설 50만원, ㅌ산업 50만원, 거부…


몇 년전 공직생활을 했던 한 고위공직자 A씨는 최근 신문사를 찾아 자신이 그동안 간직해온 각종 ‘촌지’목록을 공개했다. 10여 페이지가 넘는 목록에는 금액과 돈을 준 사람의 소속, 성금기탁의 경우 영수증 등이 자세하게 정리돼있었다. 거부하거나 돌려준 이들의 명단과 금액, 물품도 함께 적혀있다.

과장, 국장 등 부하 공무원들은 10~20만원선으로 인사청탁용으로 보이는 현금을 상납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지역의 건설업체, 교통관련 업체 등에서는 한번에 50~100만원씩 여러번에 걸쳐 촌지를 전달했다. 지역 업체와 관련이 있거나 이름이 알려진 지역 인사들 역시 50만원 이상씩을 전달했다. 갈비나 양주 등 고가의 물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대부분 별다른 이유를 달지 않았지만 ‘출장비’‘휴가비’명목으로 현금이 전달되기도 했다.

청렴한 공직생활을 약속했던 A씨는 처음부터 당연히 촌지를 거부하고 분명한 의사를 주변인들에게 밝혔다. 그러나 수시로 찾아오는 업체 관계자들은 면담이 끝난 다음 슬그머니 서랍 속이나 책상 밑에 봉투를 던져놓고는 나가버렸다. 고민 끝에 A씨가 택한 방법이 불우이웃돕기 성금. 물론 거부나 반환이 가능한 촌지는 최대한 본인에게 돌려주었다.

고위공직자였던 A씨에게 이러한 촌지와 출장비, 휴가비가 전달된 이유는 무엇일까. “잘 봐달라는 거지”라며 A씨는 자세한 답변을 아꼈다. 자신은 청렴한 공직생활의 증거로 자료를 만들었을 뿐 돈이나 물품을 전달한 이들에게 불이익을 주고싶지는 않다는 이유에서다.

행정기관과 관련있는 대형사업이나 행사와 관련해 고양시에서는 끊임없이 특혜의혹이 제기됐다. 1회 고양세계 꽃박람회의 경우 청소용역, 광고용역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특혜시비가 일어 언론에 보도가 되기도 했다. 도시계획 용도변경, 택지개발 허가에서부터 크고작은 인허가까지 행정기관과 관련한 의혹이 계속 얘기되고 있다. 대부분 분명한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의혹을 잠재우지는 못하고 있다.

인허가와 각종 규제, 단속 등 행정기관의 조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업체들이 전달한 촌지는 다분히 청탁성으로 이해된다.

임기 마지막해를 맞은 어느 지역의 기초자치단체장 B씨는 처음 접한 공직생활에서 관급공사의 문제점과 공무원인사의 어려움을 고백했다. 공개입찰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관급 공사는 잦은 설계변경과 공사액 증액으로 예산의 20%정도가 과다 계상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이 돈은 공무원의 주머니를 채우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B씨 자신이 관급공사에 대한 보고를 받으면서, 실제보다 20%정도의 예산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공무원인사에서는 첫 해, 둘째 해까지 청탁을 받아 과거의 관례대로 멋모르고 인사를 했다는 뼈아픈 고백을 하고 있다. 부하 공무원 인사에서도 국회의원, 안기부, 법조계 등 힘있는 사람들의 청탁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어쩌면 A씨의 자료는 급행료가 통하던 시절의 얘기일지도 모른다. 민선 단체장을 선출하게 된 지금 공무원들은 개혁과 민주적 절차를 희망하는 시민들만큼 합리적 행정과 인사를 희망하고 있다. 80만 고양시민들은 구시대 행정이 고양시에서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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