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한결이는 큰다. 엄두도 못 내던 ‘계단 내려오기’를 시도한다. 첫 번째 계단. 주저앉아서 두 발을 내린 다음 일어선다. 두 번째 계단. 뒤로 돌아 두 손을 첫 번째 계단에 올려놓는다. 다음 한 발씩 조심스럽게 내린다. 일어선다. 돌아선다…. 계단 네 개를 내려오면서 두 손과 바지는 시커멓게 물들었다.

한솔이를 키울 때만 해도 ‘빨리 키워 독립시키기’가 목표였다. 성장촉진제라도 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직 생각은 한곳으로 향했다. “쑥쑥키워 나를 찾겠다.”

한결이는? “크는 게 아깝다.” 순간 순간이 소중하다. 네 개의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손놀림, 발놀림 하나하나 지켜보고 싶다. 아마 한솔이라면 팔 밑에 두 손를 끼워 번쩍 들고 내려왔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한솔이에게 미안하다. 그 미안함을 뻔뻔하게 숨기고 있지만. 한솔이가 집안의 편파 판정을 탓하면“너는 손에 흙도 안 묻혔어”라며 오히려 큰소리친다. 그러나 속으로는 뜨끔하다. “엄마 때문에 내가 결벽증이 있어.” 한솔이가 짚어내면 더욱 뜨끔하다. 밖에 나가면 아무 것도 못 만지게 했다. 주저 앉아서 계단 내려오기.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잘키운다’는 명제를 잘못 해석했던 것 같다. 조급함도 한몫했다.

지금은 왜 느긋할까. 왜 빨리 키우고 싶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누군가 이렇게 표현했다. “철들어 키워서 그런다.”11년 세월로 철이 들면 얼마나 들었을까. 대신 ‘나’는 약간 뒷전으로 후퇴했다. 아니면 ‘나’라는 자만심(?)과 가능성을 접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표현하니 약간 섭섭하기는 하다….

나는 아이를 그렇게 예뻐하는 편이 아니다. 남편이야 결혼 전까지만 해도 축구팀 만들 정도로 아이들 많이 갖겠다고 떠들었다. 한솔이 낳고 일주일 후쯤부터는 쑥 들어간 이야기지만. 아무튼 요즘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예쁘다. 그 생김새는 문제가 안 된다. 그저 한결이 또래의 아이들만 보면 헤벌쩍 웃게 된다. 소란스럽게 “아! 예쁘다 예쁘다”떠들고 있는 자신을 보곤한다. 눈 높이가 17개월로 낮아지고 있는 걸 매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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