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큰 아이가 처음으로 미국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했을 때 그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질문한 내용을 듣고 한동안 참담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 자동차가 있느냐, 냉장고도 있느냐 라는 질문이었다는데, 뭘 모르는 사람들이라 그런 질문을 했겠지만 사실 아직까지도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지 의문이다. 와서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 잘 못 알려지는 게 당연한 이치다.

나라 경제력이 그 나라 국민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다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인에 비해 소홀한 대접을 받게 된다. 외국에 나가보면 이 사실을 정말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고 한다. 아무리 재능으로 일본인보다 뛰어나다고 해도 일본인한테는 존경의 눈빛을, 그리고 한국인에게는 약간의 멸시의 시선을 보낸다니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요즘 일본에서 한국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상처 받았던 자존심이 회복되고 있다.

항간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한국 여자는 일본 물건을 좋아하고 일본 여자는 한국 남자를 좋아한다’고.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한국의 배우들이나 가수들이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나도 최근에 집사람과 아이들 덕에 일본에서 활동 중인 동방신기의 팬이 되었는데 그들의 눈물겨운 일본 입성기를 보며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네들을 보노라면 사람의 재능이 정말 다양하고 사는 방법도 다양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춤과 노래를 잘해서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건 나 같이 재주 없는 사람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저 제도권에서 요구하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하는 것 밖에 달리 선택할 게 없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정말 어린 나이에 가수의 꿈을 안고 기획사에 들어가 춤과 노래 그리고 연기 연습을 했던 모양이다. 다들 만만찮은 세월을 보내고 한국에서 탑의 자리에 올랐지만 일본으로 진출하고는 다시 바닥 생활을 해야 했으니 그 고생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리 한류가 붐이라고는 해도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 어느 민족보다도 한국에 대한 혐오감이 큰 나라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한국 사람을 인정해 줄 리 없었을 것이다. 몇 년여를 피눈물을 흘리며 노력한 결과 그들은 일본 팝 역사상 외국인 아티스트로는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 이후로 오리콘 위클리 차트에 연속 1위에 오르는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이제는 가장 빛나는 시기를 보낼 때인데 한국에서 소송에 휘말리고 말았다. 그들이 소속사에 전속 계약을 풀어달라는 소를 제기한 것이다. 소속사 입장에서야 한창 잘 나가는 가수를 풀어줄 리 없을 것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알지 못할 때 맺었던 계약인 만큼 이제는 그들의 위상에 걸 맞는 대우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일단 법원이 가수들 입장을 들어  전속계약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진짜 소송은 이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유독 권위에 복종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엔 주로 소속사의 은혜를 배신한 배신자들로 낙인찍히기 쉽다. 소송에 직간접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 팬들의 힘도 무시할 수 없어 법원은 약자인 가수들 편을 들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법조계에 계시는 분들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그런 마음이 든 게 사실이다. 어쨌든 일단 가수가 승소한 것은 여러 면에서 고무적이다. 힘없는 개인들이 거대 소속사를 상대로 싸움을 걸었고 그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존의 질서를 하나하나 무너뜨리다 보면 약자들도 기 펴고 사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긴다. 나라 밖을 나가면 애국가만 들어도 눈물이 날 정도로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아무리 지긋지긋한 조국이라도 다른 나라에 가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싶은 법이다.

이제 막 꽃 피기 시작한 젊은이들이 그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며 한국남아들의 멋진 모습으로 일본인들을 사로잡아 주기 바란다. 골프를 잘하는 이들은 골프로 음악을 잘하는 이들은 음악으로 또  스케이트를 잘 타는 이들은 스케이트로 세계에 대한민국의 이름을 알리는 이들이야말로 국가 대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국가대표가 누군가의 노예라고 한다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너무 서글플 것 같다. 한국을 대표해서 나가 있는 사람들(물론 지극히 개인적인이유로 나가 사는 경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을 대표하게 된다.)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떳떳하고 당당하게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할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외국에 나가 사는 젊은이들이 더 멋지게 비상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힘찬 박수를 보낸다.

 

/ 고광석 본지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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