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민 3% 2만7000여명 농민…그마저도 자체 소비 안돼

 

<기획> 나와 너, 지역이 함께하는 운동 로컬푸드
Ⅰ. 아파트 도시에서 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Ⅱ. 친환경농업의 선두에 있는 가톨릭농민회 원주교구 연합회
Ⅲ. 지역농협의 지원, 일본 와카야마현 기노사토 농협
Ⅳ. 지역 농산물 브랜드 ‘오사카몬’
Ⅴ. 로컬푸드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 
 

최근 김치, 급식 등 각종 먹거리 파동으로 인해 주부들의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생겨나고 있는 운동들이 있다. 글로벌화 되어가는 음식 시장은 식재료들의 대량 생산과 복잡한 유통구조를 낳았다. 이는 우리의 저녁식탁에 올라오는 먹거리들을 의도적이든 아니든 원래의 신선도과 본래의 맛을 떨어뜨리고 각종 오염에 노출시키고 있다.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는 근거리에 있는 제철의 식재료를 섭취하여 불필요한 이동거리를 단축시켜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바로 로컬푸드 운동이다. 본래 반경 60Km내의 농산물로 정의내리는 것과는 다르게 국내에서는 지역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의미로 진행되고 있다. 이미 원주나 제주 등 각지에서는 생산자 단체와 시민단체, 지자체가 힘을 모아 많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소비자 운동이 활발한 고양시에서는 로컬푸드 운동이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과 문제점, 대안을 5회의 기획기사를 통해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 집 밖으로 한발 내딛는 것만으로도 수확의 기쁨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고양시 농산물의 또 하나의 매리트가 아닐까.

 
조상 대대로 500년의 긴 세월을 고양시에 뿌리내리고 3대째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는 은지농원은 고조부님 시절부터 시작해온 복숭아, 포도밭을 배밭으로 변경한 이후 고양시 우수 황토배로서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대학에서 전통농업을 전공하고 94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은지농원을 운영하던 이대표는 2007년 큰 결심을 했다. 배 재배지를 과감하게 반으로 줄이고 대신 블루베리, 체리, 사과, 감, 매실, 서양자두 등 다양한 품목의 과실을 재배토록 한 것이다.

이미 안정적인 판로를 갖고 있는 배의 수확량을 줄이면서까지 다른 재배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소비자와의 만남에 있었다. 축소된 배 밭을 대신하고 있는 과일들은 판매용이 아닌 은지농원을 방문하는 이들의 체험을 위한 것이었다. 이곳을 찾은 이들이 직접 배와 사과 등의 재배, 수확 과정을 몸소 느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 농업인으로서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준석 대표. 좋은 농산물의 생산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널리 알리고 홍보하는 것 역시 농업인이 가져야 할 자세라고 말한다.
이 대표는 얼마 전 일본의 한 도시에서 아파트와 빌딩 사이에 자리잡은 논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우리 고양시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건물하나 지으면 그 돈이 얼마인데 거기서 농사를 짓겠냐”며 “대신 그곳의 주민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쌀의 생산 현장을 직접 바라보고 농사의 고됨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이 먹거리의 소중함과 애착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몸소 보고 들어 경험하여 진정 농업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야말로 건강한 농업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것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차린 체험농원은 이곳을 방문하는 지역민들에게 고양시 배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또한 단순히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닌 직접 얼굴을 맞대고 믿을 수 있는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어 그것을 이용하는 이로서의 유대감을 만들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내는 여건을 만들어낸다. 이 대표는 “체험농원으로 돈을 벌려고 하면 안된다. 돈보다도 이곳을 방문한 이들에게 아끼지 않고 배즙하나 더 나눠주면 그 사람들이 자기 이웃한테 한 번 권해주고 믿고 먹어본 이들이 다시 또 누군가에게 권하고, 이런 식으로 입소문을 통해서 홍보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소규모지만 쌀도 재배하고 있다. 3분의 1은 지역농협에서 판매하거고 그 외는 식구들이 먹거나 직거래를 통하여 판매한다. 집에 있는 가정용 정미기로 갓 도정된 쌀을 먹어본 지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호응을 얻은 이 대표의 쌀은 모자라 못 팔 정도라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몇백 km 떨어진 곳에서 생산되어 오랜 시간을 도로위에서 보내고 우리 앞에 놓여진 농산물은 그 신선도 면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거치게 되는 여러 단계의 도소매상으로 인해 피해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 대표는 “농민들은 100원에 물건을 내놓아도 삼중, 사중의 유통단계를 거치면서 실제 소비자들은 서너배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하면서 구입하게 된다. 또 복잡한 유통구조로 농산물의 이동거리가 길어지면서 물건 값보다 기름 값이 더 드는 상황까지 온다”고 말한다. 이러한 불필요한 유통단계와 이동거리를 단축하고 신선한 우리 주변의 배나 쌀을 식탁 앞에서 맛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이 대표가 고심 끝에 마련한 것이 바로 은지농원의 체험농원인 것이다.

인구 100만을 바라보는 거대도시 고양. 이곳에서 농사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은 고작  2만7000여명에 불과하다. 3%에 채 미치지 못하는 농민들의 수확량은 전체 고양시민이 소비하고도 한참은 모자른 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지역 농산물이 무엇인지 어디서 생산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고양시민이 대다수이고 또 알고 있다 한들 어디서 구매가 가능한지 역시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 농민과 소비자의 직접적인 유통구조가 마련되지 못해 대부분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거꾸로 다른 지방의 농산물이 고양시내 각종 마트의 가판대를 차지하고 있다. 정작 고양시 농축산물이 갖고 있는 지역적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서는 고양시에서도 지역농산물의 지역소비라는 로컬푸드 운동을 알리기 위해 미약하게나마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고양시는 로컬푸드를 알리는 홍보물을 제작하고 지속적인 소비자 교육을 통해 지역농산물을 알리고 있다. 각종 소비자 단체에서는 장터를 꾸려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 생산자 역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각종 인증제도를 취득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비록 조금은 늦은 출발이지만 미약하게나마 건강한 먹거리를 통해 지역경제, 환경, 건강을 추구하는 생산자와 소비자, 지자체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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