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호의 세상만사

새해를 맞으면 세배하는 풍습이 있는데 요즘 양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생각하는 사람과 음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국가가 공인한 업무개시일은 당연히 양력 1월 1일이지만 전통풍습에 의한 명절개념에선 아직도 음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여기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에 이런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어느 날을 새해 첫날로 여겨야 할까!
새해란 새로운 해가 돋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새해는 본래 인간이 만들어 내는 날이 아니라 자연계가 만들어 내는데 그 날이 바로 동지(冬至)이다. 동지는 매년 12월 22일이나 23일에 있는 24절기의 하나로 북반구에서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곧 음(陰) 기운이 지극해져서 양기운이 생기는 날이 바로 동지인 것이며 이것을 새로운 해가 돋는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런 형상을 괘상(卦象)으로 나타낸 것이 바로 『주역(周易)』의 복(復)괘이다.

우리 선조들도 이런 이치를 알았기 때문에 동짓날 해모양의 둥근 알을 빚어 넣어 팥죽을 끓여먹는 풍습을 지켜왔다. 동지죽에서 둥근 알은 해를 상징하고 붉은 팥죽색은 양기운을 상징한다. 이는 추석에 달 모양의 송편을 빚어먹는 것과 대가 되는 행위로 동지가 새해임을 나타내 주는 단서이다. 동지를 새해 첫날로 여기는 정신은 조선 초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어서 동지에 태조 정종(定宗) 태종(太宗) 문종(文宗) 단종(端宗) 세조(世祖) 등이 대신들과 하례(賀禮) 행사를 거행한 기록들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될 점은 동지에만 왕이 직접 하례(賀禮)를 주관했지 설[正朝]에는 직접 하례를 집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설에는 각 지방에서 올려 온 하례물(賀禮物)을 받은 기록과 중국에 하례사(賀禮使)를 보낸 기록만 있을 뿐이다. 이런 근거들을 통해서 조선 왕조가 동지를 진정한 새해 첫날로 인정하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싶다.

그런데 왜 설을 따로 지내야 했을까? 역대 중국의 천자들은 나라를 열면 통치력(統治曆)을 새로 제정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삼통(三統)이라 일컬어지는 하(夏) 상(商) 주(周)의 역법이다. 하(夏)나라는 인월(寅月)-현재의 정월-을 정월(正月)로 세웠고, 상(商)나라는 축월(丑月)-현재의 12월-을 정월로 세웠으며, 주(周)나라는 자월(子月)-현재의 11월-을 정월로 세워서 천하를 통치했었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이 가운데 하나를 사용하곤 했는데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음력 1월 1일은 하나라의 역법을 본받아 쓰고 있는 것이다.

양력 설 또한 변동에 있어선 이와 다르지 않다. 이집트의 태양력을 도입하여 만들어진 율리우스력을 수정 보완하면서 그레고리 13세가 10월 4일 다음날을 10월 15일로 선포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그레고리력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지내는 설은 인간이 자연계의 이법을 무시한 채 정한 새해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오만이 극에 달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자연파괴로 인한 재앙은 바로 자연을 인간이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오만에서 시작된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지구 종말론까지 대두되는 이 때 대재앙에서 벗어나는 길은 인간이 겸허하게 자연계의 한 부분으로 돌아가 자연과 더불어 사는데서 찾아 질 수 있다. 동지의 본래 의미를 알고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이 시급한 이유다.
김백호/선도원 단일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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