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자체 상대로 한 계약법률로 학위
청구자 4명중 1명 ‘승소’, 서민권익 강조

▲ 정부나 지자체를 상대로 한 계약법률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봉채 박사
“일반 사법상의 계약과 달리 국가나 지자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은 일종의 제한 경쟁입니다. 당사자가 결코 대등하지 않죠.”

경기도 행정심판 전문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봉채 박사(54세)는 법학분야에서도 특이한 분야를 연구했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관한 연구’다. 어려운 법학에서도 더 어려운 분야가 아닌가 지레 겁부터 먹게 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서민들의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하고, 중요한 분야라는 걸 알게 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와 같은 관공서와 개인, 민간업체가 계약을 맺을 경우 다른 사법상의 계약과 똑같을 수 없다는 것이 김 박사의 주장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논리처럼 들리는데 실제 현장에서 김 박사는 소수의 논리란다.

“국가나 지자체와 민간의 계약의 특이성을 인정해야만 사익과 공익이 함께 보장된다. 예를 들어 교량을 건설했는데 하자가 생겼다고 하자. 민간처럼 무조건 누구의 잘못이냐 만을 따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실제 영동고속도로 통과 구간이나 성수대교의 경우 시공사와 시행사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다가 소송으로 가게 됐다. 그 사이에 공공의 위험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럴 때는 시정명령을 발동해서 하자를 먼저 보수하고 계약관계를 가려 나중에 책임소재를 따져야한다.”

김봉채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매우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전남 광양에서 태어났지만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서울을 떠돌아다녔다. ‘촌놈’의 도회지 적응은 힘들었고 결국 김 박사는 군대를 다녀와서 검정고시를 거쳐 27살에야 처음 성균관대 법학과 1학년이 될 수 있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석사를 마친 김 박사에게 지도교수는 새로운 분야로 박사논문을 써보라고 권했다.

“참 신기한 게 그때 KBS뉴스에서 관련된 내용을 듣고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그걸 전공으로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2006년 박사학위를 받고 바로 한국사회과학연구원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국민대, 항공대 강의는 석사 때부터 시작했다. 당시로는 생소한 분야였지만 관과 민의 계약이나 거래가 활발하고 다양해지면서 김 박사의 연구는 주목을 받고 있다. 항공대에서 법학 강의를 하면서 당시 강의를 들은 고양시 공무원들이 그의 제자가 되기도 했다.

“보람 있었던 건 제가 수업시간에 행정법규에 없는 내용은 일반 사법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는 강의를 했어요. 예를 들어 공법규정에는 과오납에 의한 환급의 경우 이자 규정이 없어요. 이를 국세기준법 과오납 규정을 적용하라고 했는데 당시 고양시 담당 공무원이 비슷한 내용을 바로 적용했어요. 법제처에 이를 문의했더니 ‘아주 잘한 행정’이라고 칭찬을 받았다더군요.”

올해 8월부터는 경기도 행정심판 전문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0명의 요원 중 김봉채 박사가 유일한 외부 전문가다. 김 박사는 자신의 업무가 진정한 ‘위민 업무’라고 자랑한다.

“공무원들은 법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안그러면 징계가 따르니까요. 우리 심판원들은 여러 상황을 고려해 ‘인용’결정을 내릴 수도 있죠.”

인용은 심판 청구자의 의견을 들어주라는 결정이다. 얼마전 김 박사는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아 영업정지 2개월을 받았다는 편의점 업주의 심판 청구를 심의하게 됐다. 김 박사는 의례적으로 ‘인용’의견을 냈다.

“담당 공무원이 찾아와 자신이 행정을 잘못한거냐고 따지더군요. 제가 그랬죠. 당신은 법대로 처리한 거다. 우리는 재량권을 갖고 위법의 이면을 살펴본 거다. 수년동안 복지시설 봉사활동을 했다는 근거서류를 첨부한 청구자는 정말 성실하게 법을 지키며 살아왔고,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걸 알아준 거다.”

김봉채 박사는 개인들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에는 처분 서류에 이의나 행정심판 청구 절차에 대해 자세하게 안내되어있는데 실제 억울하다고 흥분은 하면서 이용은 많이 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행정심판은 사법 소송과 달리 비용도 필요없고, 변호사나 전문가 도움없이도 얼마든지 청구가 가능하단다.

“가만히 있으면 누가 권리 챙겨줍니까. 해봐야 될까 하지만 실제 행정심판 인용율으 20~25%나 됩니다. 4명 신청하면 1명은 된다는 거죠.”

2001년 고양으로 이사와 행신동에 살고 있다. 법과 부동산을 강의하고, 심판하는 전문가지만 실제 자신은 투자는커녕 부동산에 별 관심이 없다는 김 박사. 자신의 지식이 고양시와 시민들을 위해서도 제대로 쓰여졌으면 좋겠다며 소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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