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기축년을 뒤로하고 희망찬 경인년을 맞이했다. 지난해는 참으로 격론과 격랑이 쉬지 않았던 해 인 것 같다.  어찌되었든 전직 두 대통령이 유명을 달리 하면서 사회분열과 갈등이 끊임없이 상존하면서 보이지 않는 분열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왠지 시원하지 못한 채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아직도 소통의 그늘이 길게 드리워져 있는 듯하다.  오는 해는 60년 만에 돌아오는 백호랑이 해라고 한다. 경인년의 경(庚)자는 서쪽, 금(金)을 뜻하고, 오행에서 금의 색깔은 흰색을 의미하므로  백호의 해다. 

자고로 호랑이만큼 우리 민족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동물도 없다.  특히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 곰과 함께 호랑이가 등장하고 있고, 근세에 세계인이 주목했던 88올림픽 마스코트가 ‘호돌이’였으며, 언제부터선가 우리나라 축구대표팀 유니폼에 태극마크를 대신해 호랑이 문양이 차지하고 있는 점을 보더라도 떼어야 뗄 수 없는 역사의 동행자다.

오래 전부터 우리민족은 호랑이에 대한 주술적 많은 풍습이 있어 왔다. 정초에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내다붙이거나 부적에 그려 넣기도 하고, 조정에서는 쑥범(쑥으로 만든 범)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나누어 줬으며, 무관의 관복에 용맹의 표상으로 호랑이 흉배를 달아주기도 했다. 글 하는 선비들도 필통이나 베개 등에 즐겨 호랑이를 새겨 넣었다. 자식의 입신양명을 위해 산방(産房)에 호랑이 그림을 붙여놓기도 하고, 기가 약한 사람에게 호랑이 뼈를 갈아 먹이는 한방요법도 있었다. 

호랑이는 사신(四神, 청룡·백호·주작·현무) 중 유일하게 실존한 동물로 특히 신화, 속담, 민담, 설화를 비롯해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예부터 우리나라에는 호랑이가 많이 살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호담지국(虎談之國)이라고까지 불렀고, 중국 문헌 ‘후한서’ 동이전에 호랑이를 신으로 받들어 제사지내는 나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쨌든 호랑이는 우리 겨례의 삶과 문화를 전해 주는 상징적인 동물로 지금도 애칭되고 있다. 우리는 흰 호랑이 해를 맞이하여 영험(靈驗)한 영물(靈物)로서 우리에게 주는 지혜를 모아보자.

첫째, 호랑이는 근면성실하다. 호랑이가 평소에 엉금엉금 기어다단다거나, 포만감에 나무 그늘아래에서 하품을 하는 모습에서 게으르고, 나태한 동물로 비쳐질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 예로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 앞발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호랑이는 소나 하마를 잡을 때처럼 전심전력을 다하여 잡는다.  한 번 목표가 정해지면 작은 일에도 쏜살같이 덤벼들어 최선을 다한다.  국가건 개인이건 목표를 정하여 전력 질주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적당한 요령이나 우연을 용납하지 않는다. 백호에게는 로또복권이 필요 없다. 생존을 위해서는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나서 유유자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호랑이한테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둘째, 화애와 배려를 실천하는 동물이다. 백호는 일반적으로 황색 호랑이에 비해 성질이 온순해 웬만해선 먼저 상대방을 공격을 하는 일이 없다. 오히려 다툼이 발생하면 먼저 나서 화해를 주선하기도 한다.  백호는 황색 호랑이와 달리 잘 뭉친다. 다른 맹수들에 비해 형제간의 우애도 가장 두텁다. 그러나 반드시 싸워야 할 때에는 결코 물러섬이 없는 특유의 용맹함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얼마 전 외신에서 “공존의 울타리”라는 제목으로 사자, 호랑이, 곰이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을 방영한 적이 있다.  원래 이들은 자기영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 태어난 대륙도 다른 생면부지의 이종 맹수들이지만 젖먹이 시절부터 '노아의 방주'라는 새끼 동물보호소에서 함께 자란 이들은 한 가족이며, 형제자매로 정을 나누고 있다. 호랑이는 사냥을 하여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욕심을 부르지 않는다. 다른 동료나 어린 새끼들이 다 먹을 때까지 경계를 담당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가끔 동물원에서 호랑이와 사자가 교배되는데 이러한 교배 결과 나온 자식을 아비가 호랑이일 때는 타이곤(tigon), 사자일 때는 라이거(liger)라고 부른다. 이러한 동물의 세계가 인간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기껏해야 칠 팔십 살고 가는 인생사에 영원한 적과 미움이 어디 있으며, 절대로 화합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왜 우리는 공존하지 못하고 이전투구만을 일삼고 있을까?

셋째, 타협과 구애의 동물이다. 옛말에 ‘호랑이는 아무리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 호랑이가 육식동물의 대표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랑이는 모두를 경계하며 홀로 살아가는 속성이 있기에 자신의 의지대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선비의 강직한 품성을 곧잘 호랑이에 빗대기도 한다. 하지만  “호랑이는 기본적으로 육식을 좋아하지만 소화나 신진대사에 문제가 생겨 채식이 필요할 경우 스스로 나뭇잎을 먹기도 한다”

평소엔 즐겨 먹지 않는 풀이 때로는 속이 좋지 않은 호랑이에게 소화제인 셈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건강을 위해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릴 줄 아는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에 고착되어 있는 사고의 틀과 선입견을 생각하면 호랑이의 자율정신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호랑이는 구애의 동물이다.  암컷 호랑이는 발정이 왔을 때 첩첩산중에서 울음소리로 수컷을 찾는다. 또 수컷에게 다가가 갖은 애교와 재롱을 피워 호감을 얻고 신방을 차리는 사랑을 할 줄 아는 동물이다. 한 번 사랑이 시작되면 하루에 30번 이상 교미를 하는 운우지정(雲雨之情)에 빠지고 만다. 수컷 호랑이는 사랑을 할 때는 전력투구를 하지만 평소에는 외도를 모르며, 다른 맹수처럼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는 모습은 볼 수 없다.  정도와 지조를 지켜 사는 호랑이의 기개(氣槪)에서 우리사회의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의 오만과 방탕을 부끄럽게 생각하자.

넷째, 호랑이는 성급함으로 실패가 잦다. 호랑이는 의심이 많은 성격 때문에 그는 머뭇거리거나 조급한 결정을 내리기 쉽다. 그는 남을 믿거나 자기감정을 가라앉히는 일을 어렵다고 생각한다. 매사 서두는 경향이 있어 속전속결하다 보니 사업에 실패하는 수가 많다.

조급함으로 전체를 망쳐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한다.  일찍이 공자는 논어에서 “ 무욕속 무견소리 욕속즉부달 견소리즉대사불성(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  즉 “무엇이든지 빨리하려고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보지 말라, 빨리하려고 하면 도달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라고 역설한바 있다.  국정도 시정도 이 일에 있어서 예외가 아니다.  4대강이 그렇고, 미디어법과 세종시가 그렇다.  우리시에는 경전철과 브로apr스가 그렇다. 무엇이 그리 바쁘고 조급한지 모두가 정치적인 포퓰리즘(인기영합)이고 국민을 호도하는 전시행정의 표출이다.  

이제 우리 앞에 닥쳐있는 미국발 금융위기와 두바이 쇼크의 여진이 아직도 국민을 움츠려 리게 하는 이 때 백호의 용맹과 기상이 주는 교훈을 받들어 이 산파를 이겨내어야 한다.  호랑이는 권선징악의 표상이다.  누구나 악을 행하면 필경 망할 것이니 선을 따라 백호의 운세를 이어 받아야 할 것이다.

작년이 다소 가정맹오호(苛政猛於虎 )한 부분이 있었다면 새해에는 모든 위정자들이 갈등과 반목 보다는 화합을, 불신보다는 격려를 실천하여 근열원래(近悅遠來)를 마음 속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고, 우리 국민은 호랑이처럼 묵묵히 주어진 사명을 위해 향해 매진하여야 할 것이다.

김형오/시민옴부즈맨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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