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살아있을 때 신나게 말하게 내버려두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지 열흘이 지났어요. 그 열흘동안 걱정하고 초조해 한 건 오히려 우리 병아리들이 아니라, 새내기 학부모님들이었을 겁니다. 가서 멋모르고 돌아다니거나, 선생님께 버릇없이 굴어 처음부터 미움을 받지는 않는지, 친구들하고는 잘 어울리는지... 두루두루 걱정이지요.

아닌게 아니라 유치원과 학교 생활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릅니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모든 것이 아이 중심이지요. 화장실도 아이들 키 높이에 딱 알맞고 화장실 변기통도 아담하니 아무 불편함 없이 앉아 볼일 볼 수 있습니다. 밥 먹을 때 나오는 도시락도 보기만 해도 마음이 즐거워지는 예쁜 색이고, 숟가락, 젓가락, 의자, 책상... 다 색도 예쁘고 작은 몸에 알맞아요.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유치원에서는 선생님이 아이들 눈 높이에 맞춰 아이의 말을 들어주신다는 겁니다.

"있지이, 치마 입고 싶은데 엄마가 춥다고 이거(바지를 더러운 것 집듯 하며) 입고 가랬어요."
"우리 엄마, 아빠 아침부터 싸워요."
"선생님, 쟤들이 안 놀아줘요"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을 선생님한테 모두 말하면 선생님은 또 다 들어주시잖아요. 집안 망신이 되거나 말거나, 엄마 체면을 깎는 말이라도,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라면 눈치 없이 언제든지 하고, 선생님은 또 그런 아이의 복받치는 말을 들어주셔요. 그러니 아직은 아이들의 말이 살아 있고 마음이 살아 있는 때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렇게 재미나게 유치원에 다니다가 학교에 들어가면 학교는 유치원과 환경이 너무 달라요. 우선 아이들의 수가 두 배나 되죠, 교실에서는 해도 되는 짓보다는 하면 안 되는 짓이 더 많죠, 공부하는 시간도 길죠.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일도 많아졌고요. 이 정도는 다 아시죠? 아무리 유치원 일곱 살 반에서 준비를 튼튼히 하고 간 아이라도 적응 기간이 어느 정도는 필요합니다.

특히 시도 때도 없이 떠들던 녀석들이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져서 학교에 가서 오히려 말수가 적어지고 좋게 말하면 '점잖아진' 녀석들도 많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 어른들이 볼 때 점잖아진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말하는 데 주눅이 들어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또 아이가 말하기를 귀찮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말하지 말아라' '일르는 사람이 더 나빠요' 하고 아예 못박아두기 때문에 친구가 때려도, 똥이 마려워도 이를 수 없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공부 시간에 똥, 오줌 마려운 걸 일일이 허락하고 나면 똥 안 마렵던 아이들도 우르르 똥 눈다고 나가는 형편이 되니 처음부터 못박아 둘 수밖에 없는 사정은 알고 있지만, 말하자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발표 잘 하게 하고, 글 잘 쓰게 하려면, 딴 거 없어요. 아이 말을 귀담아 들어주면 됩니다. 누군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신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신나게 했던 말을 글로 옮긴다면 그 또한 신나는 일일 것입니다.
자, 우리 엄마들 숙제. 아이들 맞춤법 때문에 닦달하지 말고 우선 아이들 얘기부터 귀담아 들어줍시다.


* 오늘 내 짝꿍 배나영이 소리를 질렀다. 왜냐면 내가 연필 통을 뺏었기 때문이다. (2000. 3. 9. 1학년)

* 내 짝이요 맨날이요 풀 자기가 가져와서 나만 안 빌려조요. (2001. 3. 27. 1학년)

* 나는여 오늘 학교에서 선생님 심부름을 했어요. 내가 선생님이 종이 한 장을 조서요 내가 종이 한 장을 갖고 1학년 1반하고 1학년 2반하고 1학년 3반하고 1학년 4반하고 1학년 5반하고 갔어요. (2001. 3.27. 1학년)

* 우리 누나는 내가 모르고 탁 쳐도 누나가 마구마구 때려요. 난 누나가 미워요. 누나랑 싸우기 싫은데.(2002. 1.11. 예비 1학년)
<김명자 good_g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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