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양복입고 단란주점으로

작년 일이었다. 친구가 부친상을 당했다. 예전에는 없었던 이런 일이 일년에 한 두 번 꼭 일어나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가 제법 든 것 같다. 그런데 초상집에 갈 때마다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도대체 무슨 위로를 건네야 하는지, 향을 어떻게 피우는 것인지, 부조금은 언제 어디에 놓으면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 날도 얼렁뚱땅 절차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친구와 술을 마셨다. 일요일 밤에 갑자기 돌아가신 탓인지 장례식장은 한산하기만 했다. 또 다른 친구가 왔다. 그는 매우 익숙한 솜씨로 상주와 인사를 건네고 분향을 하고 절을 했다. 나와는 분명히 행동이 달랐다. 이른바 '숙달된 조교'의 솜씨였다. 내 친구들은 어느새 '아저씨'로 변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일본에서 생활하던 6년간(92년~98년), 28살에서 34살이 되던 시기에 나 혼자만 나이를 먹지 않았고, 내 친구들은 제 나이를 먹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친구들은 음식점에 앉으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다. 일요일에 만날 때도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 아니라, 남방에 양복바지를 입고 나타난다.

헌팅하러 여대 앞이나 화양리를 같이 쏘다니던 친구들이 이제는 단란주점에 가고 싶어 안달을 한다. 그래서 저녁 술자리는 눈치보기의 경쟁이다. 자기 잘난 척을 해야하니까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그래 그러면 한 잔 진하게 사야지’란 말을 들을까봐, 자동차 바꾸는데 이사하는데 애들 교육비에 돈이 많이 든다면서 엄살떨기 바쁘다.

사실 남자들이 돈에 대해 더 치졸한 면들이 많다고 느낀다. 부어라 마셔라 많이 먹고 마시고 때론 여자도 옆에 앉히기 때문에 돈이 많이 나오지만, 여자들처럼 더치 페이에 익숙하지 않다. 술자리에 앉으면 오늘은 누구에게 덤테기를 씌울까 기회를 엿보고, 서로 견제하기 바쁘다. 공돈 생겼다고 말 한 번 잘못 꺼내면 졸지에 주위에서 멋대로 술값을 내라고 중지를 모아온다.

하지만 이런 아저씨들이 나는 밉지가 않다. 오히려 그들을 좋아하고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같은 남자라서가 아니다. 나는 그들과 털끝만큼도 이해관계를 같이 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남자’ 편에 설 이유가 없다. 내가 ‘아저씨’들을 좋아하는 것은 단지 그들이 예전에 내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우정도 남아 있고, 사랑도 남아 있다. 나는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내 친구 ‘아저씨’들 중에 분명히 ‘나쁜 남편’ ‘한심한 아버지’들이 있다는 사실도 안다. 아니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소수일지 모르겠다. 지금 상태라면 그들은 언젠가 부인과 자식들에게 버림받을 것이다. 그 친구들이 ‘황혼이혼’이나 그 전에 ‘정년 퇴직 이혼’을 당한다고 해도 사실 동정할 여지는 없다. 대부분 자업자득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생각 있는 여성들은 아저씨들을 미워하기 바빴다. 하지만 알고 보면 불쌍한 면도 많고, 정상참작을 해 줄 여지도 있다. 더구나 나는 그들이 내 친구들이기에 내버려둘 수가 없다. 그들을 좋아하는 만큼 한 번 정도는 이제까지의 생활을 반성하고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굳이 말하자면 ‘아저씨 갱생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전방위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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