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전문가로 만나 매니저된 백미영씨

 

▲ 송대관씨에게 찢어진 청바지에 반짝이를 달아입혀 시선을 집중시킨 것도 백미영씨의 아이디어였다
가수 송대관씨의 히트곡 ‘4박자’의 원 제목이 ‘뽕짝’이었다. 트로트 가수로는 최초로 송대관씨가 찢어진 청바지에 반짝이를 달아 입었다.   

 

트로트 가수이자 최근에는 오락프로그램에 태진아씨와 함께 출연해 요절복통 입담까지 자랑하고 있는 송대관씨. 그의 숨겨진 비밀을 20여년을 함께 해온 전 매니저인 백미영씨(54세)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87년 미국에서 귀국했을 때 가요계에 복귀하겠다고 제가 일하던 오아시스 레코드사에 온거죠. 당시 저는 팝칼럼니스트이자 음반사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회사 대표님께서 방송사로 함께 가 소개를 시켜주라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저도 당시에는 트로트라면 좀 우습게 생각했죠.”

당시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해 김기덕, 황인용, 원종배, 김광한씨 등 유명한 DJ가 진행하는 팝송 프로그램마다 출연해 최신곡을 소개하던 백미영씨와 송대관씨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가요계에 복귀를 꿈꾸는 트로트 가수 지망생과 잘 나가는 팝칼럼니스트. 미국에서 최신 팝송이 나오면 그 중 시장성이 있는 곡들을 선별하고, 방송국에 홍보하는 것이 백씨의 역할이었다. 가요시장이 활성화 안됐던 20년전 최신 팝송을 알고, 레코드판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방송국에서는 무조건 환영을 받았다고. 

“송대관씨가 운이 좋은 게 당시 음반시장이 직접 배급 방식으로 바뀌어서 국내 음반사들이 가요로 눈을 돌리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오아시스사도 가요 매니지먼트를 하게 됐고, 저도 송대관 일을 맡게 된 거죠.”

팝송전문가에서 트로트 가수 매니저를 맡게 된 백씨는 송대관씨에게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양복만을 입던 관행을 깨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게 한 것도 백씨의 아이디어였다.

“트로트를 전통가요라고 변화를 주지 않았던 게 발전을 더디게 했다고 생각했어요. 전 팝송이나 해외 음반 경향을 잘 아니까 그런 조언을 많이 했죠. 송대관씨는 그런 얘기를 잘 받아들이고 정말 노력하는 가수에요. 그래서 20년을 한결같이 같이 할 수 있었죠. 지금처럼 장윤정, 박현빈씨 같은 신세대 트로트 가수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송대관씨가 주도해온 변화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송씨의 히트곡인 ‘4박자’는 원래 작사가가 ‘뽕짝’이란 이름으로 곡을 주었다고. 곡은 좋은데 표현이 너무 거칠다고 생각한 송씨는 그 곡을 3년이나 묵혔다가 직접 제목도 고치고 가사도 ‘쿵짝’으로 바꾸어 발표했다. 결과는 대성공.

백미영씨는 지역에서 곽치영 전 국회의원을 도와주었던 사람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 알고보니 곽 의원과의 인연도 송대관씨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사모님들끼리 워낙 친해서 송대관씨가 이태원에 새로 집을 지을 때 두달동안 곽 의원님 댁에서 지내게 된 거죠. 덕분에 저도 드나들었는데, 선거를 앞두고 송대관씨가 좀 도와주라고 해서 인연을 맺게 됐죠.”

그래서 2001년 30년 살던 안양에서 성사동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 너무 다른 분야라 망설였지만 하다보니 누군가를 도와 일을 만드는 건 연예인 매니저나 정당 업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백씨는 현재 송대관씨가 2008년부터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가수협회 기획실장을 맡고 있다. 다른 연예인들보다 권익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가수들을 위해 협회가 할 일이 많단다. 일명 ‘노예계약’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젊은 가수들이나 지망생들을 위한 상담, 자문도 맡고 있다.

“우리가 7년 계약, 외국활동 계약은 별도로 하는 계약서 안을 만들어 제안했어요. 박진영, 양현석씨는 받아들이겠다고 했는데 이수만씨가 반대하고 있어 아직은 현실화가 어려워요.”

송대관씨와의 인연으로 고양에 오게 됐지만 이제는 고향처럼 느껴진다는 백미영씨.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 있다”는 것에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백씨는 이제는 지역을 위해 역할을 찾고 싶다고. 대 가수를 키우고 변함없는 인기를 지켜주었듯 이제는 고양에서 ‘히트곡’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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