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계속되는 동안 온 세상이 추위로 몸살을 앓는다. 추위는 사람도 차도 피해가지 않는지 얼마 전 몹시도 춥던 날에 덜컥 차가 고장 나고 말았다. 출근을 하려고 시동을 거는데 푸드득 소리만 나고 꼼짝을 않는다. 방전이 되었나 싶어 밧데리 충전도 해봤지만 차는 움직이질 않았다. 할 수 없이 견인서비스를 이용해서 카센타로 갔다. 날은 추운데 차가 맘대로 움직이질 않으니 정말 보통 고역이 아니다. 엔진의 힘으로 움직일 때는 못 가는 곳이 없고 못 오를 곳이 없는 영물이었지만 움직이지 못하니 그야말로 애물덩어리 그 자체다. 장정 서 너 명 달려들어서 밀지 않으면 꼼짝도 못하는 차를 수리하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고생이 많았다.

사람이나 차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직분을 다하지 못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정말 큰 폐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당장 나를 힘들게 하니 원망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그간 별 탈 없이 움직여 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가지게 되었다. 세상이 이렇게 굴러가 주는 것도 별 역할 없이 사는 사람들에겐 더없이 고마운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차를 움직여 출퇴근을 하는 데도 얼마나 많은 기계의 도움을 받는지, 아무 생각없이 살아오다 당장 기계가 움직여주질 않으니 그 상황이 문득 공포로 다가왔다. 어느 날 이 시스템이 멈추게 된다면 살아남을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기계의 힘을 빌려 호의호식하고 있지만 그 기계란 것을 언제까지 믿을 수 있을지, 인간이 너무 안일한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공포감의 이면에는 미국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 겨울만해도 예전에 없는 폭설이 내리고 사람들은 그 폭설로 너무나 큰 불편을 겪고 보니 헐리우드식 재난영화가 허황되다고만 볼 수 없는 것이다. 재난 앞에서는 거의 속수무책이다. 폭설에, 강진에, 지구 어느 구석도 조용한 곳이 없다. 이 모든 것이 기계를 앞세운 인간들이 이기심으로 자연을 파괴한 때문일 것이다. 빗물을 받아 두었다가 먹기도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해도 아직까지 파괴되지 않은 곳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더 큰 재앙을 예방하는 길임은 분명하다. 돈벌이를 위해 경기를 부양한다고 애꿎은 강과 산을 파헤치는 일은 돈이 없어 겪는 불행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자연재해는 인간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정말 큰  고통을 안겨준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지혜로워진다. 그것이 그나마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인데 대한민국(사람)은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탐욕스러워 지는가 싶어 쓸쓸하기 짝이 없다. 기계를 멈추게 하는 것은 가는 세월이고 자연재해다. 아무리 좋은 기계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짐 덩어리다. 아무 생각 없이 쌓아올린 콘크리트 더미(아파트)를 어디다 치워야 할지 아직 계산도 나오지 않은 상태서 또다시 재건축 얘기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개발업자를 등에 업은 정치권력이 만들어  낸 아파트 공화국, 게다가 앞으로 진행될 강을 죽이는 사업까지 어느 하나 순리를 따르는 사업이 없다. 어떤 나라에 비해도 물 좋고 공기 좋은 대한민국이 좀 더 오래, 아니 영원토록 아름다운 땅으로 남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이익을 우선해서 사업을 진행하지 말고 진실과 양심에 따라 나라를 운영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무서운 한파가 지금보다 좀 더 강하게, 그리고 조금 더 강하게 몰아친다면, 모든 것은 멈출 수도 있다. 무섭지만 진실에 가까운 가설이다.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기계들이 멈추는 순간, 그 순간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40년 만에 내렸다는 폭설로 인해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연은 알게 모르게 이미 우리를 위협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아직은 늦지 않았을 때, 자연을 파괴하는 일은 멈추어야 한다.

/고 광 석 본지 편집위원장, 대명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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