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40년 넘게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보고 느낀 게 적지 않다. 그 중 학습자 스스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학생들이 자율보다는 타율에 물들어 있고 의욕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남산 공원이나 일본 도쿄의 국립 우에노 공원 같은 곳에 가보면 비둘기 떼가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둘기에게 함부로 먹이를 주지 마시오!” 라고 적혀있다. 마찬가지로 호주에 가면 “펭귄에게 함부로 먹이를 주지 마십시오.”라는 팻말을 흔히 볼 수 있다. 왜 동물에게 함부로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것일까?

한 영국 사람이 호주에 여행을 갔다. 여행객은 호주에 벌꿀이 없음에 착안하여 꿀벌을 수입하여 키우기 시작했다. 꿀벌을 풀어놨다. 처음에는 꿀벌들이 꽃을 찾아다니더니 어느 정도 시간이 자나자 도무지 꿀을 모아오지 않는 것이다. ‘아하, 왜 이렇지?’ 하고 생각해 보면 그 원인을 쉽게 알 수 있다. 꿀벌은 지천으로 피어 있는 꽃에서 별도로 꿀을 따다가 모아둘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어떤 여행객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영국의 한 해변을 찾았다. 그는 휴가철을 넘긴 후여서 한적하고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즐길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여행객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수많은 갈매기들이 모래사장 위에 죽어 있었던 것이다. 이상하게 생각한 여행객은 죽은 갈매기들을 치우고 있는 사람에게 갈매기들이 죽은 원인을 물었다. 갈매기를 치우던 사람이 대답했다. “그 원인은 여행객들이 던져준 과자와 사탕들 때문이지요. 갈매기들은 그 달콤한 먹이들을 받아 먹다가 그만 자연먹이에 대한 식욕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지요.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긴 후에도 이곳 비둘기들은 여행객들의 달콤한 먹이만 기다리다가 굶어 죽은 겁니다.”

우리도 때때로 주위로부터 달콤한 유혹을 경험하게 된다. 그 달콤함에 탐닉하는 것이 때로는 우리에게 자기 스스로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의욕마저 빼앗아버린다. 영혼의 배고픔을 채울 수 있는 좋은 양식들을 잊게 하는 바로 그 이유가 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왕성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시간과 돈을 충분히 제공한 것이다. 따라서 실험 대상으로 선정된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마음껏 놀아야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얼마 안 가서 성인병 형태로 나타났다. 스스로 일을 좋아하고 거기에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한테는 열심히 일하는 과정 자체가 바로 일이자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육의 원리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은 ‘스스로 하게 하는 것’으로 부터 출발해야 한다. 선생님이 떠 먹여주는 교육은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점점 걷잡을 수 없는 교육의 낭떠러지로 떨어져내리는 기분이다. 집밖으로 나와 크고 작은 건물이 들어선 대로 변으로 나와 보라. 가장 많은 간판이 무엇인가 눈여겨 봐라. 단연 ‘○○학원’ 등 각종 학원 간판이 가장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억지라도 더 많은 지식을 넣어주기 위해서 애쓰는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다. 요즘 학교교사와 학원강사의 수업열정·인성 등에 대한 보도에서 누가 더 낫다는 보도에 서로들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 놓고 있는 현실에 서글프기까지 한다. 교육의 원리인 ‘스스로 하게 하는 것’이라는 대명제 앞에 양쪽 다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박종규 전 예일초등학교 교장 초등과학정보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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