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견디고 봄맞이 준비

유순한 산새로 고봉산 서쪽산맥 끝머리 벌판 가운데 서 있는 심학산(194m)은 동서남북 사방 100여리까지 막힘 없이 트인 산이다. 북한산, 김포평야, 개성의 송악산이 한눈에 조망돼 옛부터 군사 요충지였다.

한때 한강물을 막고 있었다 하여 수막산으로 불렸으며, 홍수 때마다 물에 잠긴다는 이유로심악산으로 불렸다. 조선 영조 때 왕궁에서 기르던 학이 숨어든 산이라 하여 심학산으로 불렸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여러 이름을 지녀 사연이 많았던 만큼 사람과 친숙한 산임을 짐작케 한다. 산의 초입에서 내 유년의 사진첩에서나 보았음직한 낡은 고향집을 만났다. 형태를 달리한 주변의 몇 몇 가옥들 사이에 끼어 세월의 흐름이 어색하다는 표정이지만 낡은 담벼락에 짚새로 이어 매달린 푸른 무우청이 햇빛에 마르고 있다.

산을 오르는 산비탈 길엔 누군가 밟고 지나간 몇 개의 발자국이 겨울바람에 얼어 판화처럼 찍혀 있다. 산 중턱 약천사로 가기 전 초입엔 동화작가 노경실씨가 세상에 알려준 심학초등학교가 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다룬 그 동화 속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심학산에 올라가 한강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는 심학산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심학산 동편 중턱에 자리한 약천사를 오르는 길은 중형자동차 한 대 정도가 지날 수 있는 비포장 황토길이다. 이따금 승용차로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1932년 조국 해방을 성취하겠다는 염원으로 창건된 약천사의 당시 명칭은 법성사. 주지인 허정스님은 고양시바선모가 만들어질 때 공동대표로 참여해 준 인연이 있기도 하다. 절 옆에는 위장병과 피부병에 더없이 좋다는 약수물이 때마침 들려오는 산사의 목탁소리와 함께 찾아오는 이의 목을 축여 주고 있다.

좁다란 산길 위로 갈참나무, 산개벚나무, 너도밤나무 잎으로 보이는 마른 잎새들이 땅위를 덮고 간간이 푸른 이끼도 추운 듯 몸을 사리고 있다. 잎새를 모두 내려놓은 넝쿨가지 위엔 이름 모를 붉은 산열매가 햇빛에 볼을 부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긴 나뭇가지들은 봄맞이 준비가 한창이다.

이름 모를 벌레들과 작은 날짐승, 청솔모, 다람쥐, 산토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포근한 가슴을 잊지 않는 산. 10분쯤 오르면 완만한 산등성이가 누워있다. 정상까지는 차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넓이의 황토길이 닦여 있다. 내게 달려드는 바람이 제법 봄기운을 느끼게 한다.

산마루에 서면 남으로 펼쳐진 넓은 평야를 볼 수 있다. 덕이동, 장항동으로 이어지는 들판들의 가지런한 논과 농로가 마치 바둑판처럼 보인다. 남동쪽에는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한강 물이 파랗다. 과거 한강이 넘실거렸을 들판 위에 군데군데 신도시의 흔적들이 보인다. 뒤로는 파주 벌판이 멀리까지 뻗어 있다.

언제나 이 만큼의 유순한 높이에서 말없이 앉아 있는 산. 그 산이 거기서 겨울을 견뎌내고 봄을 맞고 있다.

<권옥희·바선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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