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룰태림성보유(방송위원회 상임위원 필명)
2010년. 올 해는 6월 2일, 광역자치단체장과, 광역의회 의원들,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회 의원들, 시도 교육감을 우리 국민들이 투표로 직접 뽑는 선거의 해다.  

한국 정치현실, 어느 수준 쯤 될까? 교육계에서는 말한다. “한국에서 가장 뒤떨어져 있는 부분은 정치와 교육이다”라고. 언론계에서는 말한다. 가장 낡은 부문은 정치와 언론이다”라고. 심지어는 기업계에서도 말한다. “한국 정치는 4류”라고. 그렇다. 한국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꼴찌는 정치부문이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그 책임을 정치인 탓으로만 돌리고 “나는 정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라고 자위해 왔다. “나는 정치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 이 말을 믿어도 될까? 이 점에 관해서는 한국 근 현대 민족사가 웅변하고 있으니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정치인들을 어떻게 하면 ‘근대인’으로, ‘현대인’으로 바꿀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들이 회개하여 중세인에서 근대인으로, 근대인에서 현대인으로 탈바꿈하여 국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것인가? 근대사상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라는 말처럼,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처럼, 국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고, 연구하고 행동하는데서 싹이 트고 자라났다. 오늘날의 대의제 민주정부도 애초에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국민) 동의 없이 세금 없다”라는, 혈세에 대한 국민적 저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노래가 한동안 유행했다. 이 주권자가 늘 낮잠만 자고, 머슴들이 뭘 하는지 관심도 없고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면, 그 머슴들이 주권자인 국민들을 속이거나, 심지어 그 주권을 훔쳐 자신이 주권자 노릇을 하고 주인이 머슴처럼 되어버린들 그 누가 국민들의 주권을 대신 지켜줄 수 있겠는가? 우리 국민들은 이제야말로 진정한 주권자가 되어야 하고 게으른 낮잠꾸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거란, 국민들이 ‘민주정치인’을 탄생시키고 성장시킬 때 의미가 있다. 어떤 사람이 ‘민주정치인’인가? 우선 모든 인류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신봉자여야 한다. 신체의 자유,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집회 시위의 자유 등. 링컨이 말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의 신봉자여야 한다. 선거 때 내건 공약을 지켜야 할 뿐 아니라, 선거철만이 아니라 집권기간 내내 주민들의 경제, 사회, 의료, 교육, 문화문제들에 대한 요망사항들에 대해 늘 귀를 귀 울이고 상의하는 ‘언행일치’의 사람이어야 한다.

고양시에서는 이번 6.2 지자체 선거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민주정치인’이란 관점에서 누가 가장 적합한지를 논의하고 ‘의견이 일치하는 후보들’을 광역자치단체장과 광역의원으로,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으로, 또 교육감으로 지지하기 위해 ‘좋은 정치 실현을 위한 고양 무지개 연대’가 지난 1월 출범해 열과 성을 다한 활동을 펴고 있다. 고양무지개연대가 한국 민주정치발전사에서 획기적 업적을 쌓았다고 기록되기를 기원한다. 나아가 이러한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들이 전국의 모든 도, 시, 군에도 요원의 불처럼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룰태림/성유보(방송위원회 상임위원) 필명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