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가 이렇게 힘든 건 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유난히 추운 날이 계속되는 이상기온 때문에 벌써 와야 할 봄이건만 아직도 봄인 줄을 모르게 춥기만 하다. 이게 다 세상 탓, 사람 탓이지 싶어 불쑥 불쑥 화가 나기도 한다.

한국인이 참을성이 많다면 그건 아마도 봄을 기다리는 마음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오는 봄은 우리 곁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피어난 매화가 매혹적인 향을 선물하는 시간은 일주일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가는 하루하루가 아쉬울 정도로 봄꽃은 그렇게 빨리 지고 만다.

우리의 청춘도 그렇다.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고 이 세상을 전부를 품을 수 있을 것 같은 기상으로 넘치는 그런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아니 매우 짧다. 짧기 때문에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청춘, 그 아까운 청춘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스러지고 마는 게 작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자식을 둔 부모로서 한없이 미안하고 죄스러울 따름이다.

봄이 이리 더디 오는 이유도 그들의 죽음이 너무 슬프기 때문인 것 같다. 피어 보지도 못한 꽃봉오리 같은 자식들을 차디찬 바다에 묻은 부모의 가슴이 얼마나 아플지는 필설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다음 생에는 이 땅에 태어나지 않기를 빈다.

태극기만 보아도 애국가만 들어도 콧등이 시큰해지게 하는 나의 조국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의 나라사랑은 늘 짝사랑이다. 나는 조국을 위해 기꺼이(?) 군복무를 했다. 남들은 하지도 않는 군복무를 무려 40개월이나 했다. 그 시간에 의원을 개원하고 돈벌이를 했더라면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시간을 아까워 한 적은 없다.

먼저 간 우리 아이들도 그랬을 것이다. 기꺼이는 아니었을지라도 당연히, 너무나 당연히 조국의 부름에 나섰을 것인데 전시도 아닌 상황에 그렇게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밝혀지는 게 없다는 게 더욱 기가 막힌다. 은근히 북한의 공격이 있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죽어 간 이들을 영웅인 양 하는 것도 어이없다. 군인이 전투 중에 죽었다면 모를까 한 밤중에 이유도 모른 채 죽어 간 자식들을 영웅 만들어 준다고 그 가슴에 맺힌 한이 풀릴 리 없을 것이다. 이유라도 확실히 납득이 가도록 알려주고 사과해야 할 일이 있으면 떳떳하게 사과를 해야 한다. 그래야 망자들이 편히 눈을 감을 것이다. 그저 조문 정국으로만 끌고 가서 사람들 눈물이나 빼고 정작 사고 원인조차 모르게 한다면 어느 누가 자식을 기꺼이 군에 보내겠는가. 갖은 술수를 다 써서 군 면제를 받은 이들이 최고위층에 간다고 해도 우리 선량한 국민들은 그저 자기 업이려니 생각하고 그들이 지지 않은 짐을 대신 질 것이다. 이런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이 조국을 너무나 사랑하는 바보들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보여 주는 대로 믿는다. 진실인 것처럼 보여주는 그 너머의 것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저런 사건 사고를 당하며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신뢰는 깨어진다. 그리고 진실은 드러난다. 100년도 못 사는 인생이다. 지금 가진 권력과 명예 그리고 부가 자신을 중심으로 대대손손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면,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기 바란다. 그러면 피어 보지도 못하고 차가운 바다에서 죽음에 직면해 공포에 떨다 죽어갔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2010년 우리의 봄은 이렇게 처참하고 잔인하게 찾아왔다. 대한민국의 어른이라는 게 정말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봄이다.

고광석/본지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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