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당동 ‘행주참게 민물매운탕(웅어회)’ 이교영 대표

 

▲ 이교영 대표는 “부모님도 잘 모셨지만 감칠맛 나는 웅어회와 깊고 구수한 완자탕의 손맛을 재현해 준 아내가 곁에 있어서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입 안 가득 고소한 즐거움을 주는 웅어는 계속해서 먹어도 또 먹게 됩니다.”

청어목 멸치과에 속하는 웅어는 몸길이 22~30cm이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강에서 바다로 나가 겨울을 지내고 4~5월이면 다시 바다에서 강 하류와 갈대숲으로 돌아와 산란한다.

갈대숲에서 자라기 때문에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어라고도 하며, 성격이 급해 잡히는 즉시 죽어버리기 때문에 수입이 어렵고 양식도 불가능하다.

특히나 봄 웅어는 맛이 좋아서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르던 고기였다. 조선시대에는 행주나루터 부근에 사옹원(司饔院) 소속의 위어소(葦魚所)를 두어 웅어를 잡아 왕가에 진상하였다. 무엇보다도 행주 웅어회는 고양시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로, 회로 먹으면 살이 부드럽고 씹는 맛이 독특하고 지방질이 풍부하여 고소하다. 주성분으로 단백질, 칼륨, 인, 칼슘, 비타민A, 레티놀 등을 함유하고 있어 입맛을 돋우고 눈이 침침할 때 회복을 도우며, 열량이 낮아서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귀하고 맛이 좋아서 조선시대엔 임금님만 드셨다는 그 웅어를 다시 재현한 이교영(57세) 대표. “봄철에 잃었던 입맛을 다시 살아나게 하고, 칼슘이 풍부하여 무릎까지 쌩쌩하다”고 하는 이 대표는 매화정(강매동)에서 태어나서, 매화꽃동산을 놀이터삼아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적도 있지만, 행주나루터 부근 행주초등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웅어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던 적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 시절의 어부들은 새벽에 갓 잡아 올린 웅어를 대나무 소쿠리에 담고 참나무 잎사귀로 덮어서 지게에 지고서 골목골목을 누비며 ‘우-ㅇ어’가 왔다고 소리쳤다고 한다. 옛날 지도면 부락의 주민들은 봄이면 웅어로 잃었던 입맛을 되찾으며 농사일을 시작하였다고 했다.

이 대표의 어머니도 가족들을 위하여 웅어를 얼른 사다가 회를 떠주었는데 담백하고, 수박향 같은 신선한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회뿐만 아니라 소금에 절여서 굴비처럼 엮어서 구워먹기도 했는데, 마치 굴비처럼 부드러웠고, 회를 뜨고 남은 뼈와 머리는 도마 위에서 곱게 다져서 갖은 양념을 하여 완자탕을 끓어주셨는데 깊고 구수한 그 맛은 한 점의 회보다도 더 감칠 나게 맛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4년 전 웅어 전문점을 냈다는 이 대표. “옛날 웅어를 맛보았던 40대 후반의 지역주민들에게 그 맛을 전하며, 부모님 제사에도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서 웅어회로 끈끈한 가족에를 나눈다”고 했다.

옛날 지도면에 살던 사람만 웅어의 그 맛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인 춘천, 용인 등 전국 각지에서 임금님 수랏상에 올랐던 그 맛을 보려고 문의전화와 발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어떤 손님은 점심때 왔다가 저녁에 주변 사람들과 또 방문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즐거움을 나타내는 이 대표. 그는 웅어 전문점을 내기 전, 79년에서 86년까지 중동지역에서 중장비 운전 및 중기원(정비사, 중장비 기사) 관리를 한 적도 있다. 귀국하여 처음 만난 여인(이무순)과 결혼하여 아들 1명을 두었고, 차남인데도 부모님 모시며 살았다고 했다.

그는 토당 5거리 부근에서 카센터와 세차장(애니카서비스, 신라 카세차장)을 옆에서 운영하고 있고, 종종 주방에 들어가서 아내를 도와서 어머니가 해주던 그 웅어의 맛을 손님상에 내고 있다고 하는 이 대표. “부모님도 잘 모셨지만 감칠맛 나는 웅어회와 깊고 구수한 완자탕의 손맛을 재현해 준 아내가 곁에 있어서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