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만(전 고양시 문화원장)

지난 15일. 대화동 도촌마을 논에서 모내기 체험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는 경기 무형 문화재 제 22호 고양 송포호미걸이 보존회 (예능 전수 조교 조경희)에서 많은 예산과 노력으로 이루어 졌다. 청소년의 참여와 도시인들의 옛 모내기 실행을 직접보고 모두 내고 대동놀이로 흥과 풍년 기원제도 올리는, 민족의 아름다운 풍속을 맛보았다. 고양시 유일의 민속 놀이 무형 문화재이다.

근래에 보기 드문, 민족정기가 서린 민속 예술제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축제였다. 호미걸이 행사는 모내기를 시작으로 무더운 여름철에 두벌 김매기를 끝으로 호미를 씻어서 내년에 쓰기 위해 보관 하는 행위이다.

송포 지역은 한강 하류 지역으로 한강의 범람으로 상류 지방 유실물들이 퇴적해서 쌓인 토탄층으로 이루어 졌다. 일산 신도시 개발 사업이 시작될 때 선사 문화 연구소 (이사장 손보기 박사)에서 지표조사 발굴시 5000년경의 볍씨가 발견되어 ‘가와지 볍씨‘라는 학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한반도 유일의 반 만년전 낱알이다.

일본의 2300년 전 벼농사 흔적보다 2700년전의 영농역사를 증명해 역사를 다시 썼다. 송포 지역은 한반도에서 임진강과 한강이 교류하여 비옥한 옥토로 영농하기에 쾌적한 곳이다. 이 곳에서 농번기에 부족한 일손들을 함께 거들며 두레로 품앗이를 하며 농사를 지었다.

함께 땀흘리고 함께 기쁨과 풍년을 즐기며 반 만 년의 터전을 이어왔다. 신흥 일산신도시 건설로 지금은 상전벽해가 되고 기계화영농으로 찾아 볼 수 없지만 창연한 역사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반 만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 대동 두렛 소리와 가락으로 우리 앞에 문화와 전통으로 이어져 삶의 풍요로움을 안겨준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절 반세기동안 억압되어 왔던 민족혼이 해방과 더불어 재현되면서 고양지방의 유일한 마을 대항 두레축제가 열렸다. 제 3 공화국 박정희 대통령은 민속 경연대회를 개최하여 민족의 기상을 되살리는데 앞장 섰다.

고양의 예인 고 동관 김현규 선생은 10대 때인 1950년대에 상쇠를 잡고 두레를 이끌어 오면서 재현하는데 가난을 겪으며 일생을 보냈다. 1970년대는 고양의 후원자가 없어 서울 수색동 인근 농촌마을의 두레패와 함께 민속예술제에 참가하여 개인상과 단체 입상을 하면서 민속 대백과 사전에 서울 호미걸이로 기록되는 고양인으로서는 수치스런 역사도 있었다. 그러나 고양문화원 개원(초대 원장 이용중)하면서 송포호미걸이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경기도 대회에 참가, 대상을 수상하여 1988년 전국 경연대회에 참가 입상하고 1992년 고양시 승격기념으로 제 1회 발표를 학계, KBS와 함께 개최하는 등 계속 후계자 양성과 보존에 힘써 1996년 경기도 무형 문화재 22호로 지정(예능 보유자 김현규)되었다.

그후 ‘용구제 이무기제(국무 총리상 수상), 12지신 불한당 몰이 놀이' 외 민속놀이 4종류와 청소년 대회에서도 고양 여종고의 ‘선 공감 김감역 상여, 회대 소리’로 경기도 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고 동관 김현규 선생은 고양의 참 민족혼의 발굴과 재현에 혼신의 힘을 다한 예능인이었다. 그 동안 보존회의 시행착오와 행정 능력 부족으로 몇 년 동안의 수난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전수 보존하고 회원들의 열의와 지도자의 노력으로 원형보존 재현에 근 30여년의 연륜이 흘렀다.

그동안 그들과 함께 성원하고 후원한 필자로서는 오직 감사와 고마운 마음으로 격려를 보내며 감동에 젖어 기록으로 남기고저 기고를 한다.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로 민족혼을 되살리는 문화에 동참을 바랄 뿐이다. 문명학자 슈팽글러의 ‘서구문명의 몰락‘ 이라는 저서의 한 구절인<발전하는 문명 국가는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하였고 몰락한 문명국가는 전통문화를 상실한 국가다.>를 상기하며 “고양 송포호미걸이여, 영원 하라”고 외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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