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 모아 마을 컨설팅…20대부터 80대까지 의견 수렴

 

Ⅲ. 주민자치, 성공 가능한 일이다 <옥천군 안남면의 민관 협력 거버넌스>

“주민자치위원회요? 아휴 자기들끼리도 의견이 안 맞아서 회의가 안 되는데. 어려워요.”
시민참여, 자치에 대해 흔히 듣게 되는 이야기다. 공무원들뿐 아니라 시의 행정에 관심이 많은 일반 시민들도 자신의 경험을 들어가며 진저리를 치기도 한다. 누가 참여할 지, 어떤 결론이 날 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모든 시민들에게, 모든 것을 여는’ 시민 참여거버넌스는 불안하고, 실현 불가능한 이상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 결론을 내지 말고,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시민 참여거버넌스의 기본이라고 조언한다. 이제 고개를 돌려보자. 참여와 자치를 통해 이상을 현실로 만들고, 살기좋은 마을, 지역을 만든 사례는 의외로 많다.

충청북도 옥천군에서도 가장 작은 면, 안남면이 그 예 중 하나다. 인구 1600여명. 법정 7개리에 행정 12개리 45개 반. 1980년 대청댐 건설로 일부 지역이 수몰돼 상당수 주민들이 고향을 떠났다. 전 지역이 대청호 상수원보전 특별대책지역으로 환경규제가 심해 농사 이외에는 축산업도 할 수 없는 시골마을. 

5년간 54억 지원·에코빌 사업까지
그곳에 전국에 유일하게 면에 만들어진 어린이도서관이 있고, 작년에는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지원지역(산수화권역사업)으로 결정돼 5년 동안 54억이라는 예산을 지원받게 됐다. 올해 6월에는 충북도 지역균형발전 공모사업에 선정돼 4억원 예산이 지원된다. 에코빌 조성사업이라 불리는 이번 기회를 통해 마을에는 제로에너지 문화공간, 에코투어 생태공원이 조성되고 공동체휴면웨어 강화사업이 펼쳐진다. 2008년 주민들이 의견을 내서 안남면만의 지역브랜드 ‘안남’과 농산물브랜드 ‘배바우’가 만들어져 마을 곳곳을 세련되게 장식하고 있다.

고양시의 아파트 단지 하나와도 비교가 안될 만큼 작은 이 마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호사’가 쏟아지고 있는 것일까.

▲ 전국 최초로 면에 세워진 작은도서관. 건립부터 주민들이 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운영도 주민들이 맡고 있다.

공무원, 모임 알리고 문닫는 역할
 “결정은 다 주민들이 하는 거죠. 우리요? 주민 모임이나 회의가 결정되면 통보하고, 회의실 문 열어주고 문 닫는 게 우리 일이죠.” 이상영 면장은 ‘자신있게’ 공무원들과 주민들의 역할을 설명했다.

안남면의 변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안남면은 대청호 물이용 부담금으로 마련된 주민지원사업비가 연간 5억원 정도 지원돼 왔다. 다른 지역들처럼 이 돈은 마을에 도로를 포장하거나, 각 가정별로 세탁기를 사는 등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용돼왔다. 2006년초부터 마을의 이장들과 생각이 앞선 이들이 모였다. 마을의 미래를 위한 ‘종잣돈’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고 모두가 뜻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주민자치위원회와는 별도로 지역발전위원회라는 주민자치조직이 결성됐다. 지역발전위원회는 1억5000만원의 주민지원사업비를 모아 전문 컨설팅 업체의 안남면의 미래에 대한 용역을 맡기게 된다. 이 컨설팅에 따라 안남면은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생태문화공동체’ 개념으로 실질적인 마을만들기를 해내고 있다.

주민지원비 모아 마을비전 컨설팅
이 과정에서 2006년 주민들은 각 이장들을 중심으로 모여 실질적인 주민 자치조직인 지역발전위원회(위원장 주교종)을 만들었다. 면발전 컨설팅(1억5000만원)부터 셔틀버스 운영(8300만원), 안남면 브랜드 개발(1100만원), 도농교류센터(2억5600만원), 2003년부터 이끌어온 어머니학교 등의 사업을 모두 지역발전위원회가 주도했다. 그동안의 활동 결과를 토대로 한 54억원 예산지원의 산수화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 사업선정도 지역발전위원회가 주도했고, 앞으로의 사업도 이곳에서 이끌어가게 된다.

일반적으로 지자체에 예산이 배정되면 주민자치위원회 등 주민조직의 의견수렴절차를 거쳐 관에서 사업을 주도하게 된다. 안남면은 달랐다.

“산수화권역 사업은 한국농어촌공사가 주관하는데 원래는 면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주민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되어있죠. 그렇지만 우리 안남면에서는 처음부터 군에서 지역발전위원회에 일임했습니다.” 이상영 면장의 설명에서 민과 관의 돈독한 신뢰가 엿보인다. 

▲ 마을주민들이 직접 돈을 모아 운영하는 마을셔틀버스. 발과 소통의 공간이 되고 있다.

민과 관의 튼실한 신뢰는 기본
1990년 수몰 이후 안남면은 열악했다. 농민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저 ‘데모꾼’으로 치부돼 발언권도 별반 갖지 못했고, 이장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모임만이 명맥을 잇고 있었다. 2002년 주민자치센터가 만들어지고 그 시범지역으로 안남면이 선정될 때까지도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초기에는 주민자치위원장들을 군의회 의원들이 차기 경쟁자로 의식해 지원은커녕 따돌리기가 일쑤였죠. 임기도 1년으로 규정하고, 연임도 못하게 했죠.”

갈등과 문제는 다른 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민자치위원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발전위원회가 결성됐다.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앞선 이들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점이 눈에 띈다. 마을의 비전을 찾는 컨설팅에 앞서 지역발전위원회는 20대 청년부터 80대 노인까지 의견을 물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안남면의 보물을 적게 한 것이다. 지역발전위원회는 공통된 것, 많이 나온 것을 묶어 지역발전에 필요한 우선 사업에 순위를 매겼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안남면종합발전계획’이 만들어졌다.

안남면의 자랑인 배바우 작은도서관을 만드는 과정도 남달랐다. 도서관 건립은 국립중앙도서관과  ‘책읽는 사회문화재단’이 지원하고, 부지는 안남농협이 제공했다. 주민들은 도서관을 짓기 전 직접 금산 기적의 도서관 등을 견학하고 마을에 알맞는 도서관을 직접 설계했다. 

지역발전위원회와 주민자치위원회, 이장협의회, 산수화권역 추진위원회 등 안남면에는 주민조직이 많다. 그물망처럼 촘촘히 주민들을 묶어내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장치이다.

참여와 자치라는 로컬거버넌스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거기에 주민들의 소통과 자치를 적극적으로 돕는 관의 노력도 필요하다.

“모임이 좀 많죠. 특히 다들 농사 끝나고 모임을 잡으시다보니 늦은 시간에 회의가 많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회의 끝날 때까지 있어야죠.”

더디고, 품도 많이 드는 자치. 그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기에 다들 땀을 흘리고, 늦은 시간 귀가를 마다하지 않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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