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산동 포코무역 신창영 대표
“동유럽지역 사람들이 겪는 겨울 추위를 막아준다는 자부심이 큽니다”
일 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노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20대에 장갑, 양말, 모자, 스웨터를 폴란드,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등 동유럽으로 수출 하였을 뿐만 아니라, 30대부터는 한우를 사육하는데 열정을 쏟고 있어서 주변의 칭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신창영(46세) 대표.
“무역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의사소통이 안 되어 말문이 막히는 것이었다”고 하는 신 대표.
그는 서울에서 무역부에 근무할 때, 바이어 야누스 씨를 알게 되었고, 그의 권유로 26세 때 신용 하나로 무역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처음엔 상가 사무실도 비싸고 텃새도 심한 동대문에서 시작했는데, 샘플 하나를 얻기 위해 공장 대표를 찾아갔었고, 젊은 나이에 무릎 꿇고 빌기를 수 십 번을 한 끝에 겨우 하나 얻어서 바이어를 보여주고 작업을 했던 적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막상 바이어들을 대면하려니까 말문이 막히면서 하나도 들리지 않았던 것이 더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인 바이어와 대화를 하기 위하여 중·고등학교 영어책에서 실제로 통용되는 문장 1000여 개를 뽑아서 1년 동안 반복 끝에 통째로 외웠다고 하는 신 대표.
“16절지에 빼곡히 기록된 모든 것을 바이어 앞에서 모두 말했더니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의 꾸준한 노력과 인내는 자신감을 얻어, 28세 때는 폴란드 시장을 혼자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현지인들과 순조롭게 대화가 잘 되었고, 요즘에도 장갑이 1년에 100만 켤레가 나가서 그곳 사람들을 추위로부터 손을 따뜻하게 보호한다고 했다.
그는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라는 것이 더 절실하게 와 닿았고, 기차를 타고 바르샤바에서 크라코바로 5시간을 이동하는 중에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을 창밖으로 보게 되었는데, 소를 키우고 싶은 욕심이 그때 생겼다고 한다.
그 무렵이던 96년도 4월에 부친, 10월에 모친이 운명하시고, 9월에 딸을 낳았다는 신 대표. “하루에 병원을 3번 간 적도 있었지만 한해에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신 것이 가장 애통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97년 33세 때 사촌동생이 하던 축산농가를 보면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지금의 관산동 농장에 21마리 비육우(고기소)로 한우를 키우게 되었고, 전라북도 정읍 칠보농장에서도 사육을 하며 또 다른 꿈을 가꾸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폴란드와 코리아의 첫 글자를 따서 포코무역이라 이름짓고, 포코농장을 운영하며, 고양 축협 벽제대의원 및 경기북부 광역 브랜드인 한우풍경 고양지부 사무국장도 맡고 있다.
그리고 EM성분이 들어간 ‘골드바이오플러스’를 올해 처음 사료에 섞어 먹였더니 우사 바닥에 냄새도 나지 않고, 면역력도 강해져서 확실하게 소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했다.
필리핀 대학에서 축산학과를 나온 제이 씨가 관리하는 1500평에 235마리가 키워지고 있는 칠보농장(7개월~20개월 송아지 1년 사육하여 고양으로 올라옴)과 127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1000평 규모의 관산동 농장(6~7개월 키워서 출하)이 현재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농장 관리자와 화상을 통해 영어로 모든 근무상황을 보고 받고 있는 신 대표. “장갑뿐만 아니라 자동차를 대상으로 무역을 하고 싶고, 한우 또한 10년 안에 1000 마리 사육을 목표로 마음을 쏟고 싶다”고 야심차게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