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사달/고양무지개연대
처음 고양에 올 때 나는 1500cc 세단에 컴퓨터와 책 몇권과 수저와 옷 몇 조각을 싣고 왔다. 행신동 햇빛마을 뒤 가라산 아래 한 칸 짜리 방을 얻어 집으로 삼고, 행주대교 위에서도 한강은 드러났다. 갈매기 나는 다리 위. 중앙선도 흐릿한, 가까운데 서울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다리를 건널 때마다 시선은 용감하게 뛰어 내렸다.

맞은 편 낮은 산이 그 유명한 행주산성을 지고 엎드렸는데 아는 거라고는 집까지 가는 길 뿐이었다. 일을 마치면 종종, 아는 사람없는 새벽을 데리고 혼자 가라산 모퉁이에 산에 덧 댄 지붕아래, 지금은 타이어가게가 산을 파먹은, 포장마차를 들렀고 가을이면 한강이 밀어올리는 무대효과 같은 안개에 잠겨 감상을 피워 올렸다.

늦은 귀가는 주차공간을 허락하지 않았고 집에서 10분 거리는 양호했다. 덕분에 개구리주차 솜씨가 늘었다. 전세 2년에 조금 못 미쳐서 원당으로 집을 옮겼다. 새집증후군이 만발하던 이른 봄, 창문을 온통 열어 두고 자야했고, 어느 그믐날에는 택시에 열쇠 꾸러미를 놓고 내리는 바람에 애꿎은 소방차 신세를 지기도 했던 그 집에 살 때 결혼을 했다.

원당시장은 장을 둘러보는 쏠쏠한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재개발 되기 전 주공아파트에는 1층부터 끝 층까지 문열어 놓고 사는 이웃이 있었다. 이네들은 가끔 맞은 편 체육공원에서 삼겹살을 굽기도 했다. 원당역과 나란한 의정부 가는 길에서 집으로 바로 연결되었다. 그때쯤은  어디든 차로 다녔고 내 몸을 받들어 모시던 이 놈은 이제 20만km를 더 달렸다.

잠바와 면바지차림으로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저자로만 알았던 유시민씨를 만난 것도 이무렵. 달이 높은 날에는 공양왕릉까지 산책을 갔다. 소주 한 병을 들고 한 사직의 최후를 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비운의 주인공. 가끔 풀냄새 가득하고 지뢰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군부대의 경고문이 나붙은 그의 용포자락에 누워 취해보는 것도 낙이었다.

철길을 건너면 식당들이 모인 사거리 안쪽으로 몇 집이 모인 동네를 지나는 길은 또한 달빛을 받거나 구수한 소똥냄새를 맡기에 참 좋았다. 자유로 덕분에 조용한 북쪽땅과 달리는 차머리를 때리는 대북방송을 길바닥에서 듣기도 했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장관도 보고 임진강으로 밀려드는 서해바다를 벅차게 안아보기도 했다.

유순한 강아지처럼 엎드린 강매산과 덕양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한강(이 한강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으로는 전지구적으로 유례가 없는 수로이다) 또한 도시와 자연과 분단과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멋진 선생님이다.

점차 고양이 내안에 들어왔다. 노무현 선생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봄이 되자 전세기한이 도래했다. 내게는 서울로 나가는 통로 일뿐이었던 능곡이 이젠 7년째 붙어사는 우리 동네가 되었다. 능곡에서 태어난 아들이 넘치는 개구쟁이 장난을 발산할 수 있는 공원이 있고, 정확한 수질을 알 수 없지만 동네 사람들과 떠다 먹는 지하수는 특히, 술 먹은 다음 날 내게 보약 같다. 떨어지기만 하는 빌라를 샀는데 딱 대출만큼만 올랐다. 내 딴에는 기막힌 재테크를 한 셈이다. 소가 뒷발로 쥐를 잡은 셈이다.

고양은 인구가 100만에 육박한다. 사람들은 서울보다 공기가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호수공원이 주는 이미지는 고양보다는 일산을 잘나가는 신도시로 인식시키기에 충분했다. 고양은 녹지가 많다고 알고 있고 고양은 호수공원과 킨텍스 덕에 가히 국제적인 도시가 되어간다.

고양에 발 디딘 10년간 고봉산 주변이 개발되었고 외곽순환도로가 개통되었다. 강매산에 걸쳐질 도로가 계획되고, 무언지 알 수 없는 다릿발도 대곡역을 가로지를 태세다. 원당에서 식사동 쪽 얕은 고개 왼쪽의 섬 같은 녹지엔 골프장이 소방도로까지 내며 건설되었다. 

차차 추억이 되는 기억을 반추할 장소들이 사라지고 있다. 물론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현상들이다. 그러나 지방자치제도하에서 각 도시의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무수한 삽질만 해대는 것은 가끔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변함없이 살 수 있는 것은 나의 환경이 변함없이 유지 될 때다. 삽질행정이 누군가는 배불려 주겠지만 최소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니올시다’이다. 어디든 애정을 가지면 그 행정에 고삐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촉촉한 고양이 되기를 바란다. 이들이 모두 ‘어딘들 타향이랴’는 생각하게끔 하는 고양이기를 바란다.

아사달/고양무지개연대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