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선유리 마을에서 만난 소설가 이호철씨

'남녘사람 북녘사람'현재까지 10여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나왔고
1974년에 구속 되며 연재가 중단됐던 장편소설 '출렁이는 유령들',
30여년만에 다시 출간 되어 우리 곁으로 돌아오다.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60년 동안 헤어졌던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이 2박3일 동안 만나는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에서 96세 노모와 71세 딸의 만남은 많은 화제를 남겼다. 이를 지켜보며 남다른 감회에 젖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인데, 분단문학하면 떠오르는 소설가 이호철(78)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씨에겐 북한에 두고 온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로 누이동생이 있다. 그는 2000년 8.15 이산가족 상봉 시 평양의 한 호텔에서 북에 두고 온 누이동생과 50년 만에 해후하기도 했다. 그 이호철씨를 녹음이 어우러진 선유리에서 만났다.

이씨가 고양의 선유리 마을에 집필실을 마련한 것은 1988년. 이씨는 "집필실을 이곳에 처음 마련하던 시절 심었던 나무들이 자란 걸 보면 22년의 세월을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기자를 만나자마자 이씨는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책 제목은 ---이호철---부제로 '원융의 삶과 곧은 지향의 문학'이라는 책이었다. 강진호 성신여대 교수 등 젊은 교수들이 이호철 문학을 정리하고 새롭게 조망하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된 책이었다.

▲ 집필실이 마련된 선유리에서 만난 이호철(78)씨는 최근 백내장 수술을 받았지만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이씨는 평론가들이 분단문학을 논할 때 가장 앞자리에 서는 소설가다. 한국전쟁을 겪지 않은 아들 뻘 되는 젊은 평론가들에게조차 이호철 문학은 한번쯤 공부해야하는 대상인 것이다. 분단 체제가 야기한 상처와 질곡을 두루 겪은 그가 집필한 작품은 남다른 진정성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이나마 북한체제를 체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쓴 글은 다르다고 봅니다. 저는 북한에서 1945년부터 1950년까지 살면서 북한정권수립 전후의 사회적 분위기를 겪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인민군으로 참가하면서 전쟁도 겪었습니다. 분단문제를 다루는 소설을 쓰는데 있어 이 체험을 녹여냈기에 더 리얼리티에 접근했다고 생각합니다."

원산고등학교 3학년 때 한국전쟁이 터져 이씨는 인민군으로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었고, 가족과 고향을 북에 두고 남행 길에 올랐다. 그렇게 부산에 닿은 것이 1950년 12월 9일이었고. 그는 19세의 나이에 인민군으로 참전했던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한국전쟁 나던 해 9월 26일이 추석날이었어요. 그날 밤 국군이 올라와 울진 시내를 흐르는 강 사이를 두고 인민군과 전투를 했어요. 밤새 싸웠는데 저는 운이 좋았든지 최일선과 거리가 있어 따발총 한 자루는 메고 있었지만, 총알은 한 방도 안 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패주하여 후퇴 할 때는 얼굴 옆으로 총알이 아슬아슬 마악 지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양양 남대천에서 국군의 포로가 된 뒤의 자전적 체험은 '남녘사람 북녘사람'이라는 작품에 녹아있다. 󰡐남녘사람 북녘사람󰡑은 1999년부터 현재까지 10여 개국에 현지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바 있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항가리어. 러시아어, 중국어, 폴랜드어 등등으로.

이씨는 24세부터 80세를 바라보는 지금까지 애오라지 소설을 써 왔다. 장편 그리고 중단편을 합하면 200여 작품이 넘는다고 한다. 이 많은 작품들을 관통하는 '분단문제'는 이호철의 전 생애를 한결같이 지배했던 화두였다. 분단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천착하는 열정은 최근에 발표된 '출렁이는 유령들' 이라는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이 작품은 '역려'라는 제목으로 문예지 '한국문학' 에 3회가량 연재되었으나 1974년 이씨가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연재가 중단된 작품이었던 것은 앞에서도 비쳤었다. 이후 석방돼 2년 정도 연재하여 1978년 세종출판공사에서 한권짜리 단행본으로 출간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뒤 이 작품은 이호철 연보에만 나올 뿐, 이씨의 전집에서도 빠진 사실상 잊혀졌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두 권짜리 작품으로 30여년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잣품, '출렁이는 유령들'은 1970년대를 작품 무대으로 하여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비롯된 한일관계와 남북관계의 복잡하고 미묘한 삼각관계를 탐색한다. 이 참에 이씨의 문학관에 대해서도 들어보았다.

▲ 그는 불광동에서 많은 집필을 하고 선유동에서는 집필보다는 주로 소설낭독회 장소로 활용한다고 했다.
"소설은 현실의 반영입니다. 작가가 아무리 완성도 높은 소설을 썼다 하더라도 현실 속의 세상사는 그 소설보다 더 넓고 깊습니다. 더군다나 세상사는 항상 변하는 것이어서 작가는 늘 새로운 세상사와 직면합니다. 작가가 현실과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세상사를 이해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작가는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뒤집을 정도로 당대 현실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소설 문학의 값어치는 이 문제제기가 독자에게 어느 만큼 충격을 주느냐에 있습니다."

정치가 아닌 문학이 분단문제 해결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문학은 독자들을 감응시킬 뿐이다. 이씨는 독자를 감응시킬 수 있는 힘에 대해 긍정했고 감응시킬 수 있는 대상 중 한 사람이 북한의 김정일이었으면 한다는 말도 했다.

"김정일이 감동하는 소설 한편을 쓰고 싶어요. 제 소설을 읽을 리 만무하지만, 그리고 기대도 하지 않지만, 이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겠다 싶은 소설을 쓰고 싶어요. 통일은 쉽지 않습니다. 통일, 통일, 구호로만 이뤄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물이 차오르면 넘치듯이 그렇게 통일도 이뤄져야 합니다. 통일은 남과 북이 한 살림으로 돌아오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남과 북 사람들이 형편만큼 한솥밥을 먹는 일이 늘어나고 많아져야 하지요. 그 시기오? 급 하게는 안 되지요. 우리 산천의 운세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병우 기자 woo@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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