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의 1000호 무엇을 했나

일산신도시 제대로 만들다
1989년 6월 1일 고양신문 첫 호의 화두는 일산신도시 개발문제였다. 1989년 4월 27일 일산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농민과 세입자 4명이 자살했다. 당시 신도시 개발은 수 백년 이어온 전통사회에 대한 위협이었다. 개발반대 시위부터 주민 보상문제와 세입자 대책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했고 이후에는 신도시의 핵심 시설인 국제전시장과 출판단지가 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자족권수호 시민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운동에 힘입어 고양에 킨텍스가 유치될 수 있었다. 이후 러브호텔 반대운동 등 도시문제에 대한 여론을 주도했다.

지방자치, 한걸음 앞당기다
1990년 지방자치제 실시가 발표된 이후 지방지치 실현을 위한 집중적인 기획보도가 이루어졌다. 91년 부활된 첫 지방선거부터 2010년 제 5대 지방선거까지 고양시민에게 가장 많은 선거정보를 제공했다. 또 시의회가 제대로 일하는 지 감시하는 역할을 했고 시의원의 비리와 특혜시비에 대해서는 집중적인 추적보도가 이루어졌다. 반면 신도시 자족권수호운동 등 지역언론과 시의회가 한목소리를 내야 할 사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협조가 이루어졌으며 고양신문의 주요 기사가 시의회의 감사 대상이 되는 사례도 다수 있었다.

고양의 역사를 발굴하다
고양신문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는 고양역사의 기록이다. 고양신문은 역사를 기록하는데 멈추지 않고 역사를 발굴하고 보존하는데 매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일산신도시에서 5000년 전 볍씨가 발굴되고 밤가시초가를 보존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서삼릉 문화재지역의 훼손역사를 고발해 이후 복원 계획이 추진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행주대첩 400주년 학술발표회로 지역주민의 참여가 행주대첩 승리의 힘이었다는 새로운 인식을 하게 했고 지명유래집을 발간하고 고양의 민속과 역사를 신문을 통해 재정리하는 성과도 남겼다.

시 행정을 비판하고 칭찬하다
고양시 재정운용의 방만함을 지적하는 기사부터 불법과 비리의 온상이 되는 단속행정의 문제까지 고양신문은 매호 행정에 대한 비판기사를 빼놓지 않았다. 반면 고양시가 특별히 노력하거나 시민을 위해 잘 했다고 평가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언론과 행정의 고정된 틀을 넘어 객관적 사실 위주의 보도를 위해 노력했고, 어제의 비판이 오늘의 칭찬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자유와 관용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특히 비판에 대해서는 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대안을 함께 제시할 수 있도록 했으나 아직 부족함이 많다.

스스로 시민운동을 벌이다
원당역 유치운동 등 고양의 균형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스스로 시민운동을 벌여가는 주체가 되었다. 일산선 계획에 원당역이 제외된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렸고 주민대책위를 만들어 시위를 주도하며 지역주민과 한 목소리를 냈다. 언론으로서 위험한 선택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언론이 함께 시민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출판단지를 놓친 것. 고양신문이 유치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한 것에 대해 큰 자책감을 느끼고 있다.

문화예술의 장을 열다
1990년 5월12일 제1회 고양예술제를 시작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지역주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축제의 장을 마련했다. 원당 리스다방에서 미술전시회를 열었고 고양시 최초로 ‘아가씨와 건달들’ 뮤지컬을 상영했으며 유진규 판토마임도 유치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는 일산문화광장에서 윤도현 밴드 공연 등 대규모 축제를 열었고 89년부터 시작한 고양예술제 피아노 경연대회는 20년 역사를 가진 고양시 최장수 예술경연대회로 자리를 잡았다. 고양시에 많은 예술단체들이 탄생한 이후에는 각각의 활동을 지원하고 보도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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