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넘치며 아름다운’ 노천만의 필체 남기고

 

▲ 고 조갑녀 여사.
고양을 대표하는 예술인 노천 조갑녀 선생이 27일 별세했다. 1946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노천 선생은 건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포천농촌지도소에서 근무하던 중 원우연 포천농촌지도소 소장(전 신도농협 조합장)과 결혼, 2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서예를 시작했다.

30세에 한국 근현대 서예의 대가인 여초 김응현(1927∼2007) 선생을 만나 서예에 깊이 정진하게 된 선생은 여초 선생이 가장 아끼는 수제자이기도 했다. 선생은 월당 홍진표, 권우 홍찬유 등 당대 최고의 한학자들로부터 한학을 배우는 등 서예뿐만 아니라 한학에도 열중했다.

노천 선생은 40세에 국전 특선 작가로 서예계에 공식 입문한 후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두루 맡았고 여초선생이 만든 동방서법탐원회 회장을 맡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선생은 바쁜 작품 활동 중에도 고양과 인사동을 오가며 서예 후학을 가르쳤고 고양시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 고양시 여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선생은 20여 년 동안 서예의 전 과정을 섭렵하고 마지막 10년은 육조해서에 집중해 일가를 이루었으며 60세 되던 해에는 그림과 한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등 흐르는 세월에 아랑곳하지 않고 늘 새로운 예술의 세계로 정진했다.

선생은 ‘힘이 넘치며 아름다운’ 오직 노천만의 필체로 만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어머니처럼, 누이처럼 푸근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지역주민들의 다정한 벗이 되어주었다. 삶과 죽음은 마치 순간처럼 스쳐가고, 고인 역시 잠시 먼저 떠났을 뿐이지만, 40여년 끊임없이 연마하고 정진해 온 서예가로서의 삶이 정점에서 좀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욕심에 아쉽기만 하다. 예술가로서 노천의 삶은 가장 높고 아름다운 순간에 매듭 되었다. 노천선생의 자녀 성원과 동욱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
발행인 이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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