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남미의 어떤 인디언들은 생포한 백인들을 물 속에 던져 죽였다. 그리고 나서 시체가 (자신들처럼) 썩는지 안 썩는지를 보기 위해 익사체 주위에서 몇 주일이고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백인들이 죽지도 썩지도 않는 신들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백인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을 영혼이 없는 짐승으로 여겼다. 여기에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논평을 달았다. "양편이 모두 마찬가지로 무지하였으나, 그래도 원주민들 생각이 더 인간적인 가치를 지녔다."

"필요한 만큼만 갖는 것,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사슴 사냥을 할 때도 가장 훌륭하고 멋진 놈을 잡아선 안 된다. 그중 작고 느린 놈을 잡아야지. 그러면 사슴들은 더욱 강해지고, 그래서 늘 우리에게 고기를 마련해 주게 되지. …
그런데 꿀벌만이 저한테 필요한 것 이상을 모아 둔다. 그러니까 결국은 곰이나 사람한테 꿀을 빼앗기고 말지.

인간들 중에도 그런 자가 있다. 제 몫 이상을 저장하고 저 혼자만 잘 먹고 지내려는 자들이지. 결국은 빼앗기기 마련이야. …그들은 필요도 없는데 제 몫 이상을 차지하려고 별별 허튼 소리를 다 늘어놓는다." '작은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손자에게 한 인디언 할아버지가 해 준 이야기이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포리스터 카터/아름드리)과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시애틀 추장 외 /정신세계사)에서 우리는 세상과 자연과 사람을 모두 사랑하며 조화롭게 살고 있었던 인디언들의 낮은 목소리와 만날 수 있다.

1630년 이뤄커이 족 추장 마사와티의 동생인 쿼데나커가 팝콘 한 자루를 백인들에게 선물했다. 그날 백인들은 처음으로 팝콘을 맛보았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포리스터 카터/아름드리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시애틀 추장 외 /정신세계사

<출판 기획자>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