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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땀 한 땀 혼을 담는 전통자수마두동 강촌마을 강우경 선생
  • 박영선 기자
  • 승인 2011.03.25 10:32
  • 호수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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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우경 선생은 “전통을 이어가는 자부심이 크다”고 하며, 명장에 도전하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라고 했다.

“전통의 혼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담아냅니다.” 아름다운 우리 전통자수를 오직 장인정신으로 실과 바늘만을 이용하여 이루어내고 있는 강우경(49세) 선생. “중학교 1학년 시절부터 자수와 인연을 맺었다”고 하는 강 선생.

완도에서 병원과 약국을 운영하던 부친이 읍내 쪽으로 옮겨왔는데 입학서류접수가 이미 끝난 상태라 중학교에 못 가게 됐다. 친구들은 모두 학교를 갔지만 혼자서 외톨이가 되어 울고만 있었다. 그 무렵 자수를 하던 사촌 언니를 따라 서울에 올라갔다.

막상 서울 와서 사촌 언니의 권유로 바느질하려니까 애로사항이 많았지만, 바늘을 잡게 되었다. 사촌 언니의 스승으로부터 천부적으로 타고난 기술이라며 칭찬을 받게 되었다. 원래 꿈이 판사나 검사였기에 칭찬해도 안 받아들였는데 스승께서 수제자로 키우려고 시골집에도 안 보냈다. 그렇게 자수와 인연을 맺고 2년만에 어렵다는 산수화를 거뜬히 했다.

강 선생은 2년 후 부모님 곁으로 돌아와 학생이 되었다. 친구들은 선배가 되었고, 동생들과 동급생으로 학교를 다니면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상위권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소망하던 대로 법학과를 지원하여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법학에 대한 회의가 들었고, 결국 중도에 대학을 포기했다.

“중학교 시절 체험한 자수의 매력을 잊을 수가 없었다”는 강 선생.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결심으로 자수의 대가를 찾아 나섰다. 이화여대 김 선생, 인간문화재 한 선생, 서울문화재 한 선생 등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강 선생은 “끈기와 고집으로 가르침 받은 기술로 90년대에는 대한민국 기능올림픽 자수부문에 도전했다”고. 이미 두 번의 실패를 거울 삼았지만, 이틀 반에 걸쳐서 숙식하며 시험을 치렀다. 세 번째의 도전은 더 어려움과 힘든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금메달을 땄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지금 한창 박물관을 창건 중인 모 사찰의 실존인물의 전신 모습(고난도 기술 필요) 작업을 사찰에 머물면서 한 적도 있다. 저녁부터 새벽 3시까지 작업했다. 어느 날 새벽 1시에 동산을 넘어가는데 하늘에서 어마어마한 녹색 불기둥이 내려 솟은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못 본 동행하였던 스님은 “불기둥은 하늘에서 인정한 기술”이라고 풀이했다.

큰 힘을 받은 강 선생은 3년 동안 아무런 대가 없이 온갖 정성으로 심혈을 기울여 완성하였고, 큰 스님이 보고는 “됐다”고 인자한 미소로 답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3년 세월의 고통이 봄눈 녹듯이 녹아내렸다고 했다.

강 선생은 다라니경, 가을 독수리, 봄의 경작, 모란도, 쌍학흉배 등 대작을 주로 만들고 있다. 3m 자수 대작 수틀을 특허출원심사 중이며, 후대에 남겨줄 3미터가량의 자수도 하고 있다.

전통자수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며 작가의 길을 걷도록 양성도 하고 있다. 자수 작품에 옻칠을 도입하는 기법을 오랜 시간 동안 옻을 오르는 고통을 감수하며 연구해, 이번에 완성했다. 자수에 옻칠을 입히면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피어나서 고풍스러운 모습이 되고, 색이 탈색되지 않고 영구 보존되는 특징이 있다.

크고 작은 공예대전에서 수상경력을 갖고 있는 강 선생. 서울 과학기술대학원 전통공예 최고전문가 과정에 올해 입학하였으며, 고양시 공예사업협동조합 조합원으로 있다. 강 선생은 "전통을 이어가는 자부심이 크다" 고 하며 명장에 도전하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라고 했다.



 

박영선 기자  ysun65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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